강미정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왼쪽)과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 연합뉴스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8.15 특별사면 이후 각종 메시지를 쏟아내고 지역 일정을 소화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였지만, 정작 당 내부에서 벌어진 성 비위 문제는 방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혁신당도 사실상 본인의 이름을 딸 만큼 자신의 영향력이 큰 정당인데다, 더불어민주당의 '중도보수화'로 비게 된 진보 영역을 맡겠다고 공언했으면서 정작 여성 인권 문제엔 침묵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면담보다 지역 행보 우선한 조국…피해자 대리인 "절망"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와 지도부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당내 성비위 및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 사과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당내 성희롱·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인 강미정 대변인은 지난 4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대표가 수감돼 있는 기간 동안 함께 연대하는 당원들이 편지로 소식을 전한 것으로 안다"며 "8.15 특별사면 이후 당도 입장의 변화가 없었고, 조 전 대표에게도 다른 입장을 듣지 못했다. 침묵도 제가 해석해야 할 메시지"라고 말했다.
조 원장이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해당 내용을 전달받아 알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었고, 심지어 출소 뒤 당사를 방문했을 때는 가해자였던 당직자를 격려하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조 원장은 같은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8월 22일 피해자 대리인을 통해 저의 공식 일정을 마치는 대로 고통받은 강미정 대변인을 만나 위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좀 더 서둘렀어야 했다는 후회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15일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 18일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21일 복당한 뒤 24일부터는 부산·경남·광주·전북 지역을 두루 돌며 일정을 소화한 바 있다. 혁신당 측은 이를 "감사 인사"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조 원장이 피해자와의 만남을 미루면서 이번 사태가 강 대변인의 탈당으로까지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강 대변인을 대리했던 혁신당 여성위원회 강미숙 고문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8월 21일 (조 원장에게) 저와 강미정 대변인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당의 실질적인 리더인 조 전 대표만이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여겼다고도 전했다"며, 해당 만남이 조 원장의 지역 일정 뒤로 미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 일정을 마친 후인 9월 초에 전 대표로서 강 대변인을 만나 위로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주셨다. 피해자를 만나는 것을 보름 가까운 지역 일정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 말은 아쉽다고 했지만 솔직히 절망했다"고 털어놨다.
혁신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사인 조 원장이 피해자와의 만남을 연기하면서, "조 전 대표께도 이 일은 당에서 절차대로 종결한 '사건'일 뿐, '사람'은 후순위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이야기다.
수감돼 있었다지만…"당의 실질적 리더"로서 정치적 책임론 제기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 대웅전에서 삼배하고 있다. 연합뉴스혁신당과 조 원장은 문제의 성 비위 사건들이 접수됐던 지난 4월 당시에는 그가 구속 수감돼 있어, 당원조차도 아니었다며 관련 책임론을 부정하고 있다.
조 원장은 "당에서 조사 후 가해자를 제명조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적 박탈로 비당원인 제가 당의 공적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 공당의 체계와 절차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로 당적이 박탈된 상황에서, 자신이 당무에 개입하면 오히려 '사당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에 관여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황현선 사무총장도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접견 당시엔 당무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 사담 성격인 위로의 말이 오갔었다"며 "만약 조 원장이 당무에 관여했다면 정당법 위반이며 언론에서 사당화뿐만 아니라 '옥중 정치를 한다, 옥중에서 당무를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강 고문은 이에 대해 "조국혁신당은 좋든 싫든 조국의 당이고, 당원·권한 여부를 말하는 것은 형식 논리"라며 "당원도 아닌 사람이 주요 당직자들의 의전을 받으며 현충원에 참배하는 등의 일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혁신당에서 조 원장의 영향력은 그 어떤 인사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당명을 '조국(曺國)신당', 즉 조 원장의 이름에서 그대로 따려고 했지만 선관위가 허용하지 않아 보통명사인 '조국(祖國)'을 활용해 '조국혁신당'으로 이름을 지었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혁신당은 조 원장의 사면·복권이 확정된 뒤 현 지도부의 임기 단축을 결의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를 다시 선출하기로 하는 등, 사실상 그의 대표직 복귀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오는 11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조 원장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진보 영역' 차지하겠다면서 '여성 인권' 대응은?
당의 방향성 측면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혁신당이 민주진보 진영의 '왼쪽 날개'를 자임해왔다는 점에서다.
조 원장은 지난달 24일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가 중도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며 "왼쪽, 진보 영역이 좀 비었기 때문에 제가 좌완투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간 혁신당이 자주 내세웠던 '사회권 선진국' 등의 구호에서 엿볼 수 있듯, 사회개혁이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노선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작 조 원장과 혁신당의 이러한 구호와 달리, 전형적인 진보 의제라 할 수 있는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선 당이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복수의 혁신당 관계자들은 CBS노컷뉴스에 "당내 의원 12명 가운데 일부는 피해자를 도우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했지만, 또 일부는 다소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전자에 속한다고 지목된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의원들이 양분돼 '세력화'가 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정당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일부 의원들은 대체로 사건을 수습하는 일 위주였고 저를 포함한 다른 의원들은 '사건 처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기조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반면 후자에 속한다고 지목되는 다른 의원은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미칠 파장과 함께 실질적으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지 등에 대해 고려한 것"이라며 "의원 12명을 양분해서 '사건 처리에 미온적이었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