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실장과 경제부지사를 중심으로 다들 손에 물 묻히는 일을 좀 하세요." 공식행사에서 좀처럼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김동연 경기지사가 정색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경기도 '민생경제 현장투어' 둘째 날인 26일 양주 청년센터에서 열린 '청년 창업자 간담회'를 마치는 자리에서 김 지사는 굳은 얼굴로 공직자들을 꾸짖었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숨은 '화'를 감출 수 없었다.
청년 창업가들, 벤처기업 공공조달·대출제도 개선 등 다양한 제안
사정은 이랬다. 한 청년 창업자가 퇴직금을 모두 털어 만든 제품을 전량 폐기할 위기에 닥쳐 대출을 받으려했지만 해당 기관에서 3개월치 매출을 요구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청년 창업자에게 특화된 대출심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아직 상품을 출시하기 전의 청년 창업자들에게는 제품을 구매해 줄 고객의 데이터베이스 확보 여부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기했다.
또 다른 청년 창업자는 취업 지원 제도에서의 창업 관련 협력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취업과 창업 사이의 갈림길에 놓인 청년에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여러 지원제도를 같이 안내한다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창업자는 창업 과정에서 제대로 지원 제도를 활용하지 못해 6개월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했다. 이는 곧 창업 관련 지원 세금의 낭비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영세 창업자에게도 직장인처럼 육아지원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나 신용보증이나 대출 말고 통신비·전기세 등 초기 운용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 도입, 벤처기업의 공공부문 조달 방안 등 다양한 논의거리가 간담회에서 나왔다.
26일 양주 청년센터에서 열린 양주시 청년센터 청년 창업자 간담회 모습. 경기도 제공 공직자들 "제 업무 아닙니다" 취지 발언에 "말 잔치" 혹평하며 특별지시
이에 김 지사는 경기도 경제실과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 관련 기관 담당자들에게 대신 답변해 줄 것이 있느냐며 안내를 지시했다. 그러나 각 기관에서 돌아온 대답은 "우리는 자금을 대출해주거나 보증해주는 기관은 아니다", "경기도와 협의해보겠다" 등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답변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김 지사는 "간담회 참석자들이 '저 기관에서 이런 제도가 있으니 거기에 얘기해보세요'라는 답변을 들으려 온 게 아니다"라며
"공급자 위주의 답변은 식상하다"고 다그쳤다. 일부 담당자들의 답변에 대해 "말 잔치"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오늘 여러 일정이 겹치면서 간담회가 늦어졌다. 이런 얘기들으려고 기다린 게 아니었을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결국 김 자사는 청년 창업자들의 제안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특히 김 지사는 담당부서와 기관을 지적하며 벤처기업들의 공공부문 조달 방안 강구, 대출 시 담보나 3개월 매출 실적이 없어도 기술력이나 잠재력으로도 가능하게 하는 방법 강구, 채용할 때의 인건비 지원, 중앙부처에서 지원받았을 때 경기도의 중복지원이 불가하다는 방침의 재검토 등을 직접 지시했다.
간담회 초기 어두웠던 청년 창업자들의 얼굴은 환해지고, 여유있던 경기도 공무원과 산하 기관 임원들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간담회를 마친 뒤 김 지사는 취재진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이 검토하겠다고 말하는 건 일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특히 이 일은 내일이 아니다. 저쪽에 알아보라라고 말하면 안된다. 도청도, 산하 기관도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한다" 김 지사는 평소 'Mr. 진정성'이라고 불렸다. 일을 한다면 진정성 갖고 해야지 대충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달려가면 달라집니다'는 '달달버스'가 본격 업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