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주주권익을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처리가 임박한 가운데 상장사들이 법 시행에 앞서 선제 대응에 나섰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합병을 통해 주주 간 이해 상충을 해소하는 상장사가 있는 반면, 상법 개정 이후엔 문제가 될 수 있는 판단에 속도를 내는 모습도 포착된다.
국회는 이르면 이날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사회가 경영 판단을 할 때 소액주주의 권익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주주 친화적인 문화가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상장사들이 법 시행에 앞서 대응하는 분위기다.
HD현대 계열사 '합병'…"이해 상충 해소"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는 지난 1일 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결정했다. HD현대건설기계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흡수합병하는 형태로 내년 1월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합병이라고 평가한다.
HD현대가 2021년 8월 HD현대인프라코어(옛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서 한 그룹 안에 건설기계 사업을 하는 상장사가 두 개가 됐다. 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주주 간 이해 상충 문제를 합병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주주환원 확대도 가능하다는 분석에서다.
NH투자증권 이재광 연구원은 "경영진은 상법 개정 시 발생할 수 있는 주주 간 이해 상충에 대한 법적 문제 우려 없이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고, 투자자 역시 이해 상충에 따른 주주가치 침해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모두 2026년까지 배당성향 30% 이상 달성을 공시했고, 합병 이후에도 이를 유지할 방침이다. 합병의 시너지 효과로 늘어나는 이익은 배당액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자사주 '셀프 처분'…"상법 개정시 문제될 수도"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이진수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관계자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최대주주나 계열회사에 처분하는 곳도 있다. 올해 최대주주 또는 계열사에 자사주를 처분한 사례는 코스피 상장사 5개와 코스닥 상장사 2개 등 모두 7개다.
자사주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어 사실상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를 시장에 처분하면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된다. 다만 최대주주나 계열회사에 처분하면 상법 개정안에 따라 문제가 될 여지가 발생한다.
한화투자증권 엄수진 연구원은 "경영상 필요성 및 가격 등 조건의 적정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이 문제 될 수 있고 거래조건 등이 특정인에게만 유리하면 배임에 해당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연구원은 이어 "특별한 사업적 시너지 없이 경영권 방어 및 확보 등을 위한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면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고 소액주주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앞두고 자진상폐…더 늘어날 수도
상법 개정을 앞두고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상장사도 있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분할이나 합병은 종종 발생하지만, 자진 상폐는 '이례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올해 자진 상폐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섰거나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상장사는 모두 4개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지분율 95% 이상을 확보하면 자진 상폐를 신청할 수 있다.
한화투자증권 엄 연구원은 "개정 상법 시행 후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 외부 자본으로부터 경영권 공격, 소액주주 관여활동 등이 증가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강화 전 기업구조를 개편하거나 자금 조달, 신사업 추진 등 굵직한 경영 사안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심지어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공개매수를 통해 자진 상폐를 추진한 대표적인 상장사는 텔코웨어다. 공개매수 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30.64%였고, 보유한 자사주는 44.1%에 달했다. 지난달 10일까지 지분율 25.24% 매수를 목표했지만 10.44%에 그쳐 결과적으로 자진 상폐를 실패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자진 상폐 추진으로 풀이된다.
대신증권 이경연 연구원은 "텔코웨어는 보유 중인 자사주 비율이 높아 전량 소각 시 최대주주의 지분율 급감에 따라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기에 다소 부담이 되는 수준이 된다"면서 "점차 주주 연대가 힘을 얻고 행동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행동주의 타깃이 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자진 상폐를 선택한 것으로 시장은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에서도 발생한다. 일본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인 기업에게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앞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나 자사주 비중이 높은 상장사 가운데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 상폐에 나서는 곳이 늘어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