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돌이켜보면, 기업인 출신 장관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이렇게 적었나 싶을 정도로 기업인 출신들은 씨가 말랐었다. 노무현 정부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윤석열 정부의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정도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본인이 기업인 출신임에도 단 한 명의 기업인 장관이 나오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했던 기업인 출신들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거 장관과 대통령실의 요직으로 발탁됐다. 이재명 정부 30일간의 숨가쁜 여정속에 국민들이 가장 신선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인사였다. 단순히 생색내기 용은 아닌 듯 하다. 부처 중에서도 힘이 있는 산업부와 과기부에 기업인 출신들이 배치됐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AI 산업을 얼마나 비중있게 생각하는지가 인사를 통해 드러났다. AI 업계에서는 '배우 하정우'보다 유명한 네이버 출신 하정우 대통령실AI미래기획수석의 발탁이 그 시작이었다.
업계에서 더 파격으로 느꼈던 인사는 배경훈이다. 초대 과기부 장관으로 국회의원들 이름 몇몇이 거론되던 상황에서 현직 LG AI연구원장이 장관으로 발탁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배 후보자는 하 수석과 함께 쌍두마차로 불릴 정도로 업계에서는 리더십을 형성하고 있었다.
업계에서 훨훨 날던 이 두 사람을 어떻게 데려왔을까. 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강훈식 비서실장이 이들을 직접 만나 간곡히 설득했다는 말도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정관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이 30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산자부 장관에는 김정관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이 뽑혔다. 기획재정부에서 관료 생활을 마치고 2018년부터 일찌감치 두산으로 간 그는 기업인으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다. 예산을 쥐게되는 기재부 장관 후보자에는 'AI 코리아'라는 책을 저술하며 AI 전도사를 자임한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이 지명됐다. 소위 '크루'라고 불러될 정도의 강력한 팀이 형성된 것 같다.
이들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은 일처리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기업과는 달리 정부에서는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당연히 '늘공'들의 저항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관습으로 굳어진 부처 업무 처리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속도감있게 공무원 조직을 설득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어렵게 설득해 데려온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지금 대통령의 머릿속은 이념이나 상징성을 떠나 국민들에게 가시적 성과를 내야한다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성과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직접 뛰어들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가능성이 높다"이번 정부의 인사 과정에 관여하고, 내밀한 사정까지 아는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파격적으로 기업인 출신들을 등용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공무원들을 움직여야한다. 부처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거나, 관료들의 저항이 극심해지면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들이 들어간 부서를 직접 챙기고 힘을 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역대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거의 유일한 기업인 출신 장관은 2003년 삼성 출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정도다. 당시 수십억원의 삼성 연봉을 포기하고 공직을 맡은 진 전 장관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힘을 얻었다. 그는 정통부의 토론 형태와 업무 프로세스, 보고 방식은 물론 하다못해 조회, 책상 정리 방식까지도 '삼성 스타일'을 주입했다. 효율성을 추구하고 경쟁을 강조하는 그의 카리스마는 공직사회 전체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한국에서 기업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계의 인재들이 공직을 맡기를 꺼린지가 오래다. '구인난'은 한국 정부의 치명적인 고질병이다. 기업인들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인재들이 공직에서도 활약할 수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실험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며, 국민들이 기업인 출신 장관 발탁에 큰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