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교를 사칭해 물품 구매를 유도하는 사기 범죄가 유행함에 따라 고려대학교와 한양대학교 등이 홈페이지에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의 공지문을 올렸다. 고려대·한양대 홈페이지 캡처·광운대학교 제공지난달 24일 광운대학교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피아노 구매 여부를 재차 확인하는 전화였다. 광운대 측은 금시초문이었다. 근래 피아노를 주문한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운 것은 전화를 한 A업체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전날 광운대학교 총장 직인이 찍힌 구매확약서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A업체는 이런 문서를 믿고 피아노에 연결할 케이블까지 대신 구매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케이블업체에 2천만 원을 입금한 상태였다.
황당한 사건의 전말은 지난달 광운대 재무팀 직원을 사칭한 누군가가 A업체에 전화를 걸면서 시작됐다. 그는 광운대 직원 명함, 구매확약서 등을 문자에 첨부해 업체는 신뢰할 만한 거래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물론 모두 위조된 것들이었다. 그가 안내해준 케이블 업체 계좌 역시 사칭범 측의 계좌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최근 광운대 사칭 피해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2천만 원의 피해를 본 A업체를 불러 진정인 조사를 마쳤으며, 계좌와 전화번호 추적 등을 통해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광운대가 추후 지급하겠다"…사칭에 속아 2천만 원 입금
대학을 사칭해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는 비단 광운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고려대학교와 한양대학교 등 서울의 주요 대학에서도 유사한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대학가에 '사기 주의보'가 발령된 모양새다.
서울 고려대학교에서도 지난 5월 황당한 연락이 왔다. 자신을 고려대 예산팀 직원이라고 소개한 인물이 수백 만 원 상당의 와인을 구매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와, 이를 수상히 여긴 와인업체가 고려대 측에 확인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와인업체가 조기에 확인 절차를 거친 덕분에 실제 피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황당한 일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고려대는 최근 누군가 교직원을 사칭해 정육점에서 고기를 외상으로 구매해 간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름을 도용당한 고려대 직원, 정육점 업체 등은 해당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지난 5월부터 신원불명의 사칭범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는 현재 홈페이지에 '교직원 사칭 사기 범죄 주의 안내' 안내를 띄우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유사한 사례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양대학교에서도 일어났다. 지난달 한양대에 "혹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맞냐"는 전화가 걸려와 자초지종을 파악해보니, 누군가 한양대 직원을 사칭해 행사를 진행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칭범은 행사 진행을 계약한 업체들에게 일부 품목은 특정 업체의 물건을 써달라는 요청과 함께 개인 계좌를 보냈다고 한다. 광운대 피해 사례와 매우 유사한 수법이었다.
한양대 관계자는 "저희 (이름이) 악용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저희가 사기를 직접적으로 당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 의뢰 등은 하지 않았다"며 "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각별한 주의를 바란다는 공지를 했다"고 밝혔다.
경희대학교에서도 최근 직원을 사칭한 누군가 업체에 물품 발주를 넣어 사기를 시도했다는 사례가 접수됐다.
"비대면 주문은 사칭 위험 있어…입금 전 확인 전화해야"
비대면 거래가 계속 활발해지면서 이같은 사칭 사기는 계속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최근 유명인을 비롯해 정치인, 소방직 공무원 등을 사칭하고 위조된 공문 등을 보내는 방식으로 피해 사례가 계속해서 경찰에 접수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방송인 탁재훈씨의 매니저를 사칭한 인물이 서울 강남구의 한 음식점에 수백만 원 상당의 고급 위스키를 주문해 경찰에 사기 혐의로 입건됐다. 강원 원주에서는 원주소방서 소방관을 사칭한 인물이 과일가게에 허위 주문을 하고, 심지어 구급장비 키트까지 대신 구매해달라고 요청했던 사건이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 관계자는 "비대면 주문은 사칭 위험이 있으니, 예약금이나 구매 대금 등을 실제로 입금하기 전에 꼭 확인 전화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