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박종민 기자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찰의 2차 출석 요구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찰 입장에선 윤 전 대통령이 경찰의 출석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더라도 체포영장을 섣불리 꺼내기 어려워서다. 내란 특검 출범이 가시화한 상황 속 경찰의 윤 전 대통령 영장이 꺾일 경우 관련 수사 동력 상당 부분이 상실될 수 있다.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오는 12일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의 2차 출석 요구에 일찌감치 불응할 방침을 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법률대리를 맡은 윤갑근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2차 소환요구에도 불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경찰 측이 주장하는 혐의는 성립하지 않고 사실도 아니다. 출석해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라며 "12월 6일이든 7일이든 윤 전 대통령은 경호처에 비화폰 정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적용한 혐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 체포를 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하고 계엄 나흘 뒤인 지난해 12월 7일 군 사령관들의 비화폰 정보를 삭제하라고 지시(대통령경호법 위반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5일 창설 이래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윤 전 대통령이 이에 불응하자 2차 출석요구서를 보내 오는 12일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하며 압박의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을 조사실에 앉히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와 경찰 안팎의 중론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경찰이 적용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날(10일) 공포된 내란 특검법이 소환 불응의 실질적인 이유로 작용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르면 다음달쯤 특검이 출범해 모든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굳이 경찰 조사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역대 최대 규모 내란 특검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며 "경찰이 사건 마침표를 찍기 어렵다면 굳이 (윤 전 대통령 자신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 후 반년 만에 소환장을 발송한 경찰은 일단 윤 전 대통령이 2차 소환에도 불응할 경우 3차 소환장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윤 전 대통령이 불출석 방침을 유지한다면 경찰이 꺼낼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4차, 5차 소환장을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포영장 신청을 신청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내란 사태 주범을 상대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대상으로 경찰이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낸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위험 부담이 크다. 만에 하나 법원(혹은 검찰)에서 체포영장이 기각당하면 수사 동력이 꺾일 우려가 있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이미 내란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 도망 염려가 크다고 보기 어렵고, 관련 수사도 수개월간 진행돼 증거인멸 우려 역시 적은 상황인 데다, 변호인단과의 소통 채널은 열려 있어서다.
경찰 내부에서는 특검 출범 전 윤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수사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읽힌다. 특검이 출범하면 경찰뿐 아니라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진행하던 내란 관련 사건이 모두 이첩된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 개혁 국면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수사력을 입증할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특검 진행 상황과는 별개로 경찰은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