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과 안동시 일직면 일대 산림이 까맣게 타 있다. 연합뉴스 대형 산불이 날 때마다 불을 급속히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건조한 날씨 속 강풍'과 불에 잘 붙고 오래 타는 소나무가 지목된다. 불붙은 솔방울은 강풍을 타고 수십, 수백미터씩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나오지만 좋아하는 나무 설문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있는 나무인데 큰 산불만 나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지난달 21일 산청·하동을 시작으로 잇따른 역대급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서울 크기의 80%에 달하는 산림이 피해를 입는 등 최악의 피해가 발생했다. 대형산불의 발생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지, 심지 말자는 데도 악착같이 소나무가 심겨지는 배경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소나무 심지 말라고 했는데 1년 뒤 가보니 다 소나무"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일했던 산림전문가 김영선 박사는 불이 나고 1년 뒤 현장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연구원에서 불이 났던 산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 될지 의견을 냈는데 반영이 안됐더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저희들이 현장에 가서 이제 다음에 심어야 될 나무들에 대한 지정을 해줬다"며 "산불 났던 지역이 고성부터 울진까지였는데 계속 똑같은 소나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경남 산청지역 산불 장기화로 27일 오후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 산불 흔적이 가득하다. 연합뉴스
수분이 적고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송진 성분으로 인해 활엽수에 비해 불이 쉽게 붙고 타는 시간도 2.4배 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산불 피해가 집중된 경북 지역도 소나무 숲 면적이 45만8천여 헥타르로 강원도(25만8357헥타르), 경남(27만3111헥타르) 등보다 훨씬 넓었다.
김 박사는 "도로에 가까운 산에는 소나무 말고 벚나무 등 경관림을 심고 바닷가 쪽에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크는 해송을 심는 등 여러 나무를 심으라고 했는데 1년 뒤 가보니 다 소나무를 심었더라"고 허탈해했다.
산림청 산림기본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산림당국의 인공조림 현황을 수종별로 보면, 소나무를 포함한 침엽수는 13만5000ha를 차지한 반면 활엽수는 9만ha에 그쳤다.
또 산림청은 2019~2022년 산불 피해지의 조림수종을 활엽수 51%, 침엽수 49%(소나무 36%)로 결정했지만, 2023년 말 중간발표를 보면 실제 조림 실적은 전체 1558㏊ 가운데 침엽수 비율이 61%로 높았다.
산불 방지를 위해서는 활엽수가 좋다는 것을 모두 알지만 소나무가 더 많이 심기는 것은 일단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66%를 차지하는 사유림 소유자들의 의지가 반영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개호송 숲 일부가 산불에 피해를 본 가운데 수목치료업체에서 까맣게 탄 소나무를 세척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립산림과학원 가강현 연구관은 "동해안 산불 때 산주들의 78%가 소나무를 원했다"며 "송이는 고산의 7부 능선에서 주로 나오는데 그 지대에서는 다른 나무들이 잘 못자라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작년 여름 폭염이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가을철 송이 값은 등급에 따라 Kg 당 백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강원도 지역 축제에서 1등급 양양송이는 1킬로에 140만원에 팔렸고 인터넷 쇼핑몰에는 자연산 송이가 170만원 이상의 가격표를 달고 나왔다.
산주들의 입장에서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이른바 '金송이' 를 낳는 소나무를 포기하기 쉽지 않은 배경이다.
그러나 소나무가 타버린 땅에 소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송이가 금방 나는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가이자 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는 "소나무 인공조림한 곳에 송이가 난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며 "소나무를 새로 심는 것은 물론 소나무를 키우기 위해 작은 활엽수 등을 베어버리는 조림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 연구원은 "불에 타 죽은 소나무 땅 속에 일정 기간 송이균이 있는 것은 맞지만 묘목이 자라는 동안 불나기 전처럼 소나무 광합성을 통해 충분히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송이균은 대부분 죽는게 맞다"고 말했다. 소나무 묘목을 심어도 지금 살아 있는 송이균이 송이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개호송 숲 일부가 산불에 피해를 본 가운데 수목치료업체에서 까맣게 탄 소나무를 세척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연구원은 "미래에 송이균 접종 기술이 더 발전하면 지금 심는 묘목이 송이의 기반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송이가 날 수도 있어 산주들은 그걸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송이가 나는 숲에 묘목을 심어 일부러 송이균에 감염시킨 뒤 옮겨심는 '송이감염묘' 육성이 개발되긴 했지만 산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활성화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선 박사는 산림복구를 위해 소나무가 심어지는 것에 대해 묘목업자와 지자체 등의 이해관계를 지적했다.
김 박사는 "묘목을 하는 업자들이 무슨 나무를 많이 심었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며 "소나무는 놔둬도 잘 자라니까 키우기가 좋다. 돈이 덜 드는 상황에서 키워 놓고 다른 나무 없어요 하면 소나무를 심을 수밖에 없고 결국엔 소나무가 크게 자라 불나서 타면 또 묘목을 팔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불에 타 검어진 산을 빨리 푸른색으로 만들고 싶은 시장, 군수들의 조급함도 있다. 김 박사는 "단체장으로선 시커먼 산을 보기 싫을 거다. 주민들도 난리칠 거고. 빨리 식재를 해서 조치를 하고 싶은데 산림과학원에서 얘기했던 벚나무 등 다른 수종의 활엽수가 없어 소나무를 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활엽수 많이 심어 내화수림대 만들어야
지난달 24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일대 산이 시커멓게 타버린 모습이다. 연합뉴스산림전문가들 대부분은 소나무 등 침엽수 비중을 줄이고 화재에 강한 활엽수 중심의 조림사업을 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김영선 박사는 "중간중간에 산을 좀 밀어서라도 물이 많은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등 물이 많은 활엽수, 불에 강한 나무를 심어 놓으면 산불이 가다가도 중간에 주춤해져 불을 진압할 수 있는 시간적 틈새가 생긴다"며 "소나무 단일 수종은 한방에 쫙 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본, 캐나다 등은 이런 완충지대를 만들어 산불 대응을 하고 있는데 많이 부족한 게 우리 상황"이라며 "70년대 우리나라의 보드(나무합판) 수출이 1위 였는데 지금은 목재 98%를 수입한다. 산림당국이 사실상 산을 방치해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는 훨씬 더 강경하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온대림으로 원래 수종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산이다"며 '숲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키작은 활엽수 등을 베어내는 문제를 강하게 꼬집었다.
최 대표는 "고로쇠나무는 1월부터 물이 오르고 다른 활엽수도 3월이면 물이 다 차 불에 강한 것"이라며 "우리의 일반적인 숲에서 희귀종은 대개 풀과 때죽나무, 생강나무, 진달래 등 키작은 나무들인데 숲가꾸기라는 이름으로 다 밀어왔다"고 주장했다.
"산림청은 이런 나무들이 불이 나면 사다리가 돼 위의 큰 나무로 옮겨붙는다는 논리를 펴지만 그 나무들은 이미 물이 다 차있어 마치 물이 꽉 찬 수도관이에요. 불에 잘 안타요"
지난달 27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야간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수영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교수는 한반도 생태계 자체가 활엽수로 가는 추세라며 지역 환경에 맞는 조림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 교수는 "5-60년 전에는 헐벗은 산을 빠르게 조림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산림당국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코르크 층이 두꺼운 내화수종을 많이 심는게 맞다. 다만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은 토양이 건조하고 바닷바람이 많아서 능선 부위는 소나무 외에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또 "기후에 따른 한반도의 생태변화로 서쪽은 이미 활엽수로 많이 대체됐다"며 "소나무는 활엽수와 경쟁이 안돼 이런 추세라면 미래에는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프장 헤저드라도 더 만들어야 할 판…방치된 나무, 가지는 불쏘시개"
김영선 박사는 경상도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랐지만 아직까지 올해 들어 큰 불이 없었던 강원도에 주목했다.
김 박사는 "강원도에는 올봄에 갑자기 큰 눈이 두 번 왔는데 그게 습설이었다"며 "산불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으로 건조 시기에 어떻게 하면 습도를 높여 줄 건지 큰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담 같지만 대부분 산 속에 있는 골프장 헤저드라도 늘려서 습도를 높여야 할 판"이라며 "인공강우를 통해 비도 좀 오게 하고 눈도 좀 오게 하는 방법들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2017년 중국 네이멍구 산불화재 당시 인공강우가 활용돼 1mm 정도 비가 왔지만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며 "올해 인공강우 관련 예산이 90억 정도 되는 것으로 아는데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숲가꾸기를 하면서 베어낸 나무와 가지 등을 산에 그대로 적치해 산불이 나면 불쏘시개가 된다는 우려도 많았다.
김영선 박사는 "숲가꾸기라는 이유로 나무를 자르고 가지를 치는데 그걸 빼내는 예산은 지원하지 않아 불이 날 수 있는 소스가 어마어마한 것"이라며 "숲가꾸기로 쉬운 일자리만 창출하고 위험은 방치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형 진화헬기 도입과 산불대응을 소방청이 하도록 하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외에도 국유림에만 산불이 나는 것이 아닌데도 전국의 산림조합이 도맡아 국유림에 임도를 개설하는 사업의 효율성 문제, 경제림 조성 등 정부가 뜻대로 할 수 없는 소규모 사유림의 한계, 전국 지자체 산림과의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등 산림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와 고민,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