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제공 여섯 달 전이다. 천지간에 나를 잃어버린 그 날 새벽은 이런 대화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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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처리업체 사람들이 새벽 여섯 시 삼십 분에 수거해가요."
"여섯 시 삼십 분요? "
30분 남았다. 그사이 찾지 못하면 끝이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하나의 존재가 불현듯 자취를 감추듯. 끔찍하다.
새벽 5시에 응급실에서 암 병동으로 이송됐는데, 병실에 들어와서야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송 침대 위에 두고 내린 것이 분명했다.
"이송 요원하고 통화를 했는데요, 시트에도 없었다고 하네요!"
간호사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알려준다. 응급실 당직 간호사하고도 세 번 통화했지만, 내가 누웠던 침대 주변에서는 찾지 못했단다.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을까? "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한다.
"이송 요원이 그냥 침대 시트를 통째로 둘둘 말아서 햄퍼에 넣었을 거 같지 않아요?"
내가 의심하자 간호사가 뜻밖에 동의한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우리는 먼저 응급실을 찾아가 그곳 폐기물보관소의 햄퍼를 뒤져보기로 했다. 이송 요원을 의심하면서, 그의 말이 거짓이기를 바라면서.
암 병동에서 응급실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다. 우리는 창문 너머 새벽 어스름이 기지개를 켜는 하늘을 흘끔 바라본 뒤, 경보선수처럼 전속력으로 걸어간다. 헉헉 숨을 뱉어내며…… 간호사가 응급실 폐기물보관소로 들어가, 자기 폰으로 내 핸드폰 번호를 누른다. 제발! 열 개의 진홍색 햄퍼 자루 가운데 어디서든 진동음이 들려오기를!
조용했다. 열 개 햄퍼 모두 실패다. 우리는 맥이 빠져 암 병동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다가 다시 한 가닥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우리 암 병동 폐기물 수거함에 시트를 넣었을 수도 있어요!"
간호사는 가능성이 있다며 갑자기 걸음에 속도를 낸다. 벌써 6시 24분이다. 6분 뒤면 폐기물처리업체 직원이 밤새 햄퍼에 담긴 폐기물을 수거해간다. 세탁처리장으로 실려가 물과 세제의 세례를 받고 장렬하게 전사할 핸드폰을 상상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암 병동 폐기물 수거실에 도착하니 6시 35분이다. 아직 폐기물처리업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이곳에서도 찾지 못하면 더는 희망이 없다. 오! 제발! 간호사가 첫 번째 햄퍼 앞에서 발신 버튼을 누른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울린다. 우리는 햄퍼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귀를 바짝 세운다. 아무 소리가 없다. 이럴 수가! 간호사가 두 번째 햄퍼 쪽으로 다가간다. 역시 조용하다.
"잠깐요!"
간호사가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세 번째 햄퍼 앞으로 갔을 때였다. 진동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저기 다섯 번째 햄퍼 같아요! "
간호사가 장갑 낀 손으로 햄퍼 안에 버려진 침대 시트와 환자복과 피 묻은 솜뭉치 등을 헤집는다. 그리고는 지옥에라도 떨어진 듯 어둠 속에서 덜덜 떨고 있는 핸드폰을 건져 올린다.
벌써 7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제야 왼쪽 가슴에 달린 간호사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박수범. 이십 대 후반쯤으로 키가 작은 남자 간호사다. 그는 천사처럼 명랑하게 퇴근했고 나는 맥이 풀려 병실 침대에 눕는다.
응급실에서 암 병동으로 오기까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밖 하늘을 보니 그믐달이 떠 있다. 살얼음 같다. 손으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머리를 만져 본다. 이틀 뒤 수술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던 시간이 믿기지 않는다. 옆구리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핸드폰을 잡는다. 건강하고 자유롭다고 착각할 때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 녀석이다. 심란한 마음을 쓸어낸다. 그것참!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촛불을 켠다. 다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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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갔다. 수술은 잘 마쳤고 생명은 고스란하다. 꽃과 나무와 대지 위에서 춤추는 먼지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새롭게 돋아나는 열망도 새순처럼 눈부시다. 나는 가볍고 자유로우며 비어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날 새벽 천지간에 나를 들쑤셨던 핸드폰은 마음속 서랍에 가둬 놓았다. 먼지의 여행법처럼 알 수 없는 것이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