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제루터교회 앞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들이 붙여놓은 종이가 찢어져 있다. 박인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혐의로 체포되면서 16일 '집회와의 전쟁'이 일단락 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 시민들은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전날까지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던 한남동 국제루터교회 앞은 수취인 불명의 화환 수십 개와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내용이 적혀 찢겨진 종이들만이 남았다. 윤 대통령이 관저를 떠나면서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리는 등 격분하며 윤 대통령이 조사를 받고 있는 수사기관 인근으로 옮겨 집회를 이어갔다.
이날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들렸다가 썰렁해진 현장을 보고 당황한 지지자들도 있었다. 경북 구미에서 올라온 서모(83)씨는 취재진에 "어디가 사람들이 몰려있는 데냐"고 묻다가 "시골에서 뉴스 보고 올라온 건데 너무 조용해서 당황스럽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관저 주변을 서성이던 김모(67)씨도 "체포된 거 보고 집회를 하러 나왔는데 조용한 거 보니 아침부터 헛걸음을 한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확성기 소리가 멈추자 시민들은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20년이 넘게 거주했다는 김모(62)씨는 "항상 시위는 청와대 쪽에서 했으니 이런 적이 처음인데 정말 다시는 이 쪽으로 (시위대가) 안 왔으면 좋겠다"며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평화롭다"고 말했다. 인근 직장을 다니는 차모(33)씨도 "직장에서 확성기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해 환기도 못했다"며 "갑자기 조용해져서 어색하지만 이제야 원래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1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육교의 현수막이 모두 철거돼있는 모습. 박인 기자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육교의 현수막도 모두 사라졌고, 충돌 우려로 통행이 제한됐던 구역도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됐다. 지하철로 등교를 하는 김상엽(25)씨는 "원래는 한강진역까지 5분이면 가는데 그동안 굳이 버티고개역으로 15분을 걸어 가서 지하철을 탔다"며 "오늘은 시위가 끝났다길래 여유롭게 나왔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한남초등학교에서 국제루터교회 방향으로 가려면 주민들은 육교를 건너 반대편 도로로 가야 했다. 육교를 건너기 위해선 100m가 넘는 줄에 들어가 기다려야 했고, 집회 인파가 몰리면 육교의 통행마저 통제되곤 했다.
집회에서 들리는 과격한 발언에 불편함을 느끼던 학생들도 있었다. 인근 중학교에 재학 중인 서모(15)군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발언이) 자세히 들렸는데, 욕이 너무 많이 들렸다"며 "친구들끼리 (욕을) 따라하면서 놀기도 했는데 별로 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학생 이모(16)군도 "욕이 너무 많이 들려서 힘들었다"며 "숙제를 할 때도 집중이 하나도 안 돼서 짜증난 적이 많았는데 시위가 드디어 끝나서 너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15일(어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인근 편의점에 비치된 일부 라면의 재고가 소진됐다. 박인 기자시위대가 떠나자 시원섭섭하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인근 카페 직원 A씨는 "집회를 할 때가 매출이 훨씬 오른 것은 사실"이라며 "가끔씩 무작정 화장실을 쓴다고 해서 매장 내부가 혼란스럽긴 했지만 평소보다 장사가 잘되긴 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직원 B씨는 "집회할 때는 손님들이 추워서 들어온 채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서 다른 손님들을 받지 못해 힘들었다"며 "오늘은 갑자기 손님이 많이 빠져서 일의 양은 줄었지만 너무 조용해서 섭섭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직원 외 출입금지', '외부인 출입금지' 등이 적힌 종이가 붙인 채 굳게 닫혔던 관저 인근 건물의 문들은 이날 다시 열렸다. 특히, 관저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일반 시민은 물론 경찰마저 엄격히 출입을 통제했던 서울특별시중부남부기술교육원의 문도 활짝 열린 모습이었다.
한남초등학교는 여전히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날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도 보안관에게 신분을 밝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을 한남초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C씨는 "(시위대가) 언제 다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있다"며 "일단 시위가 끝나서 다행인데 출입은 계속 통제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이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앞으로 옮겨 공수처 앞 도로를 점거하고 집회를 이어갔다. 이날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적부심사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과,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에서도 집회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