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헌법재판소 연구관이던 노희범(59·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는 난데없이 일터에 떨어진 대통령 탄핵심판 증거 서류를 넘기며 수없이 밤을 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 대통령 탄핵심판은 그가 17년간의 헌재 연구관 생활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터졌다. 그때도 세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을 볼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신속, 공정, 정확'한 탄핵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크리에이터 박수연오늘(1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정식변론을 진행한다. 이미 윤 대통령 측은 매일 수차례 언론과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장외 여론전을 펴고 있다. 노 변호사도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에서 국회 소추대리인단에 합류하며 '윤 정권 탄핵심판'에 참전했다.
CBS노컷뉴스는 그가 어느 쪽을 대변하는지를 떠나 헌재의 속사정까지 잘 아는 헌법 연구자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었다. 1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탄핵심판이 정치 투쟁, 선동의 장이 돼선 안 된다"는 우려였다. 이하는 질문과 답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탄핵심판의 본래 기능이 변질 또는 폄훼되지 않고 재판이 진행되느냐 하는 점이다. 윤 대통령 측은 현재 억지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변호사 입장에서 대통령을 충실히 변호하고 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변호사에겐 헌법과 법률을 존중해야 할 의무도 있다. 변호사법 1조 사명에 그렇게 규정해 놨는데 법 테두리를 벗어난 주장을 펴고 있다.
-"불법체포는 내란" "탄핵심판은 이념투쟁, 정쟁의 장" 등 윤 대통령 측 변호사들의 최근 발언들이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탄핵심판이 '정쟁의 장'이라고 주장하는 건 탄핵심판 절차의 본질과 기능을 명백히 왜곡하고 폄훼하는 거다. 탄핵심판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제도가 아니다. 고위공직자의 헌법·법률 위반 여부를 엄격히 판단해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규범적' 심판 절차다. 헌법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미국의 경우 하원이 탄핵 소추를 하고, 상원이 결정하는 '정치적' 심판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탄핵 소추 기관은 국회이고 심판, 즉 파면 여부에 대한 결정은 헌재가 하는 것으로 이원화시켰다. 제3의 독립기관인 헌재가 심판을 함으로써 (정치적 심판이 아닌) 규범적인 심판 절차로 만든 거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법체계 밖에서 주장하는 건 변호인의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그 자체가 법체계를 무너뜨리고 무력화시키는 내란이라고 볼 수 있다. 변호사는 어디까지나 변호사지, '해결사'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탄핵심판 심리와 결정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 있다면?='신속', '공정', '정확' 세 가지 원칙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심판은 신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탄핵소추로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권한대행이 국가를 운영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권한대행 체제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우리 헌법이 예정한 대로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국정이 운영돼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관들은 심판 절차를 지연·방해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단호하게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막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재판 출석에 따라 변론의 장이 선전·선동의 정치적 장으로 변질될 소지를 재판부가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 정당한 변론 범위 내에서만 (변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 측이 탄핵소추에 적용되는 법규정 중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는 윤 대통령 측의 반발이 타당하다는 입장도 많았다.
=국회 측은 '탄핵소추 사유'가 아닌 '적용 법조'를 정리했기 때문에 정당한 법리적 주장을 했다고 본다. 또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 어떤 법률을 위반했느냐 하는 것은 법적 평가의 문제로 헌재의 직권 판단 사항이다. 국회가 내란죄 위반을 철회하겠다 하더라도 헌재가 그에 구속되는 건 아니다.
변론 절차를 지켜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론 헌재가 형법상 내란죄와 관련해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추후 헌재 결정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형법상) 내란죄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만 '헌법 위반'의 중대성만으로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판단한다.
-헌재가 이번 탄핵심판 변론기일 5회를 일괄 지정했다. '속도전'을 펼치겠다는 신호로 읽히기도 하는데, 최종 결정은 언제쯤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늦어도 2월 안에는 선고가 돼야 한다고 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가 더 간명하다. 또 지금 내란죄 공범들이 이미 구속돼서 재판에 넘겨졌다. 충분한 (수사기록 등) 자료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 심판 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헌재 역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가장 우선적으로 심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계속되는 국정 혼란을 인식해 집중 심리, 우선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노희범 변호사는 "탄핵심판이 정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CBS노컷뉴스 크리에이터 박수연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 헌재엔 각국에서 다양한 언어로 탄핵심판 결정문 등 관련 자료에 대한 요청이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탄핵심판을 경험해 본 나라는 두어 곳뿐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절차가 진행된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었다. 당시 헌재는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재판부 앞 좌·우·중앙 중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논의하는 등 탄핵 절차를 하나하나 확립했다.
노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심판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고 돌려 말하면서도 헌법학자로서 "참담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다만 값비싼 비용을 세 번이나 치르는 만큼 잘 이겨낸 후도 기대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이란 불행한 사건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이번 탄핵심판을 잘 마무리하고 극복해서 대한민국 헌정이 더 공고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