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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당일, 시·청각 장애인들에게는 더 짙은 '암흑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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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통역 없던 담화, 청각장애인들에겐 '파편화된 정보'
화면해설·재난문자無…시각장애인은 "실시간 상황 인식 어려워"
장애인 정보 접근성 제한됐던 12·3 비상계엄 선포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밤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시·청각 장애인들에게는 더 큰 혼란으로 다가왔다. 수어 통역이 제공된 대통령 담화 방송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고, 재난 문자도 없어 시·청각 장애인들은 한정된 정보 속에서 불안에 시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이상현(30)씨는 텔레비전 화면 속 빨간 박스에 적힌 '계엄 선포'라는 글씨를 보며 상황을 그저 추측해야 했다. 2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씨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방송을 찾기가 어려워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실시간으로 알기가 어려웠다"며 답답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청각장애인 배우 김리후(34)씨 역시 "한국어와 수어는 서로 문법 체계와 규칙이 다르다"며 "수어를 주 언어로 삼고 있는 농인에게는 자막만 봐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와 김씨에게 한글자막이나 구(口)어는 제2의 언어로, 수어보다 즉각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김씨는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지하철에 타고 있었는데 영문도 모른채 이대로 죽는 것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최초 사망자가 청각장애를 가진 김경철님이었다. 당시 계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슬픈 죽음을 당했는데 해당 일이 떠올라 심리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의 비판도 이어졌다. 청각 장애인 부모의 자녀 모임인 코다코리아는 지난 6일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소수자의 인권은 가장 먼저 위협 받는다. 농인의 정보접근권 보장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청인(聽人)들이 비상계엄 이후 무엇을 할지 논의하고 행동에 옮길 때, 농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오후 10시 28분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진행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KTV 국민방송 생중계를 포함해 당시 대부분의 매체들이 실시간으로 속보와 방송을 내보냈지만 수어 통역과 해설 방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각장애인 조모 씨는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는 방송화면 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곧바로 상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긴급재난 문자도 오지 않아 위기 상황인지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시·청각 장애인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청각장애인 고광채(42)씨는 "비상 상황에서 청인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듯 농인들에게도 수어 통역, 문자 서비스 등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지난 11일 장애인 정보접근권 보장 확대를 골자 삼은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재난방송 송출 상황에 수어 통역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재난방송 및 민방위 경보방송 실시에 관한 기준' 고시는 재난방송의 수어통역 제공 의무를 임의 규정으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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