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7시간 여 만에 해제되며 '졸작 단편영화'같은 결말을 맞았다.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될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저마다 압수수색과 관계자들을 소환하며 윤 대통령을 향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CBS노컷뉴스의 취재와 사정 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 내란 사태는 거의 1년 전부터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국민과 전 세계에 회견을 통해 예고하는 내란이 어디 있고, 2~3시간 만에 국회가 그만두라고 그만두는 내란이 어디 있느냐"(석동현 변호사)며 내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지만, 정황과 관계자들의 진술은 내란 정황에 힘을 싣고 있다.
尹 '비상조치' 첫 언급 "지난해 11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내로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저지하려는 시민 및 국회 관계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번 내란사태의 출발 시기를 가늠하는 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진술이다.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군 조직에서 대표적인 '충암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지정돼 있었다.
여 전 사령관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비상조치'에 대해 처음 들은 시점은 "지난해 11월 말과 12월 초 사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전 사령관은 '비상조치'를 계엄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여 전 사령관과 함께 '계엄군 3인방'으로 불리는 곽종근 특전사령관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이 함께 진급한 시점이다. 이들에 대한 중장 진급자 삼정검(三精劍) 수치 수여식에서 당시 윤 대통령은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태세를 가질 수 있도록 정신교육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김 전 장관과 여 사령관과 만나 "어려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대권 조처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다시 한 번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내란 모의의 정황은 올해 6월 포착됐다. 이번엔 윤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고 한다. 여 전 사령관은 "올해 5월과 6월 대통령 관저나 안가의 식사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여러 번 진지하게 계엄 선포를 논의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시기는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대패한 이후다. 범야권이 무려 192석을 가져가면서 극심한 여소야대 상황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총선이 외부세력의 해킹 등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최근 담화에서 밝히기도 했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비상계엄은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두 사람만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포석은 이때 어느정도 완성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1월 계엄? 전·현직 정보사령관 '요원 준비'
황진환·류영주 기자·대통령실 제공본격적인 준비가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한 달 전부터다.
곽 사령관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달 초 김 전 장관과 군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잠시 들러 다시 한 번 '비상조치'를 언급했다고 한다. 곽 사령관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올해 초 김 전 장관 주재로 군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중간에 참석해 비상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는 '계엄군 3인방' 등이 모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뒤 김 전 장관은 '계엄군 3인방'을 다시 불러 모은 자리에서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에 계엄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시기 등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렸다는 게 여 전 사령관의 입장이다.
이후부터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등장한다. 문 사령관은 지난달 22일 정보사 예하 부대 소속 정모·김모 대령에게 "공작을 잘하는 인원 15명을 선발해 보고하라"는 지시와 함께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영상'을 요약해 예비역 장성 교육 자료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른바 '햄버거집 회동'이 나온다. 김 전 장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노 전 사령관. 이번 내란사태의 '비선 기획자'로도 지목되는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이 선포되기 이틀 전인 지난 1일 경기 안산시의 한 햄버거 매장에서 문 사령관, 정모·김모 대령과 만나 "중앙선거관리위원 전산 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관위로 계엄군이 투입될 것을 암시했다. 노 전 사령관이 떠난 이후 문 사령관은 두 대령에게 "비상계엄"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후 계엄 당일인 지난 3일 문 사령관은 다시 두 대령에게 "임무가 있을 수 있다"면서 2개팀에서 총 30~40명의 요원들을 준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양말과 속옷 등을 챙기라며 작전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발표되기 직전, 문 사령관은 요원들에게 계엄 계획에 대해 교육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요인 암살·체포 등에 투입되는 정보사령부 산하 북파공작원부대(HID)도 경기 성남시 판교 소재 정보사령부 예하 부대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지난 9일 라디오 등에 출연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정치인 10명 체포 명단이 나오지 않았나. 그들이 국회를 빠져나가거나 숨어있을 경우 HID가 투입돼 체포해오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따르면, 체포 명단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유튜버 김어준씨, 김명수 전 대법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윤 대통령은 그날 오후 10시 23분쯤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은 국회와 중앙선관위 장악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회가 다음날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 처리하면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른바 '서울의밤'은 초라한 결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