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 최대 정보통신(IT) 업체 화웨이가 개발한 첨단 AI용 GPU(그래픽처리장치)에서 대만 TSMC의 고성능 반도체가 발견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라고 TSMC 측에 명령했다.
로이터통신은 9일(현지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상무부가 TSMC에 서한을 보내 인공지능(AI) 가속기 및 GPU에 필요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보도에 앞서 지난 8일 반도체 전문 매체인 중국 이지웨이는 TSMC가 오는 11일부터 AI 가속기 및 GPU에 필요한 7㎚ 이하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중국 반도체 설계회사에 통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TSMC가 중국 업체들에게 반도체 공급 중단을 통보한 것은 미국 상무부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GPU에서 TSMC의 첨단 반도체가 발견 됐기 때문이다.
앞서 로이터는 지난달 22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가 화웨이의 첨단 AI용 GPU인 '어센드 910B'를 분해한 결과 TSMC의 반도체가 사용된 것을 발견해 TSMC 측에 알렸고, TSMC는 다시 이를 미국 당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TSMC 자체조사 결과 자사 고객사를 통해 화웨이가 해당 반도체를 우회 구매한 것으로 드러나자 TSMC는 해당 고객사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고, 이번에는 미국의 요구로 중국 반도체 설계회사 전체에 대한 공급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0년 미국의 핵심 기술이 중국군에 사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군과 밀접히 관련된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진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화웨이의 설립자 런정페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통신 장교 출신이다.
이에따라 화웨이는 4년여간 고사양 반도체가 사용되는 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난해 7㎚급 고사양 반도체를 장착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당시 해당 고사양 반도체를 어떻게 공수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화웨이가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와 협업해 생산한 '기린 9000s'인 것으로 잠정 결론났고, 이후에도 화웨는 고사양 반도체를 탑재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여기다 최근에는 화웨이가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AI용 GPU인 엔비디아의 'H100'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가진 '어센드 910C'를 개발했다고 홍보하는 등 잇따라 반도체 '기술 독립'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센드 910C'의 이전 버전인 '어센드 910B'에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서 공수한 TSMC의 반도체가 사용된 사실이 발견되면서 화웨이의 기술 독립 수준에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센드 910C'에도 TSMC의 반도체가 사용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AI 클라우드를 위한 반도체 설계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알리바바와 바이두 같은 중국 빅테크 업체들도 앞으로 TSMC로부터 첨단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돼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TSMC의 이번 조치는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드러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전 "대만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빼앗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TSMC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트럼프 당선인을 위한 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량한 사람이고 미국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