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은 7일 140분간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통해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논란과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 씨 의혹 등에 대해 해명했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으며 "남은 임기 동안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쇄신을 다짐했다. 다만 사과의 구체적인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8월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이후 70일 만에 기자들 앞에 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브리핑룸 단상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준비해 온 대국민 담화를 약 15분 간 읽은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지난 8월의 경우 집무실에서 국정브리핑을 40여 분간 진행한 뒤 브리핑룸으로 이동해 단상에 서서 질의응답을 했는데, 형식면에서 다소 달라진 셈이다. 단상과 의자의 거리도 1m 이상 좁혔다.
짙은 남색 정장에 연보라색 넥타이 차림을 한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경기와 물가를 걱정하며 "국민 여러분 보시기에는 부족함이 많겠지만 저의 진심은 늘 국민 곁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저의 노력과는 별개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윤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 대담에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 박절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과나 유감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면서도 따로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중 물을 마시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읽기 전 "물을 좀 마시고 해야겠다"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고개를 숙일 때도 굳은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담화에서는 '국민'이 25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미래'와 '개혁'이 각각 8번, '민생'과 '위기'가 각각 7번 언급됐다. 담화와 회견 전체에서는 '사과' 8번, '잘못' 1번, '불찰' 1번, '부덕의 소치' 1번, '죄송' 1번 등 총 12번의 사과 표현을 썼다.
회견은 125분 간 진행됐고 총 26개의 질문이 나왔다. 담화와 회견 시간을 합하면 140분으로 역대 회견 중 가장 길었다. 김 여사 논란 및 대외 활동 중단, 명씨와의 관계와 '공천개입' 의혹,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입장 등 갖가지 주제로 질문이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프롬프터 없이 "솔직하게 다 말씀드리는 것이다", "저도 설명을 좀 자세하게 하겠다"고 각종 질의에 허심탄회하게 답변했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해선 "매사에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데 이렇게 국민들한테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도 치르고, 국정을 원만하게 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국정 개입' 의혹엔 강하게 선을 그었다.
또 국민의힘 입당 직후 연락이 쏟아질 때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휴대폰으로 대신 답변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미쳤냐, 지금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냐'고 하니까 (여사가) 이렇게 지지하는 사람들한테 '고맙다', '잘하겠다', '잘 챙기겠다' 답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도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윤 대통령은 명 씨에 대해선 "대선 때 요만큼이라도 도움을 주려 노력한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매정하게 한 게 본인도 또 섭섭했겠다 싶어서 전화를 받아줬다고 참모진에게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명 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에도 "몇 차례 정도 문자를 했다고는 하는데,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일상적인 게 많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회견 시간이 1시간 50분을 넘어가자 진행을 맡은 대통령실 정혜전 대변인을 향해 "하나 정도만 하자. 목이 아프다"고 했다가 기자들이 손을 들자 추가 질문에 응하기도 했다.
질의응답은 기자들이 손을 들면 정 대변인이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26개 매체가 질문했지만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 8월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 때 질문 기회를 가진 매체들이 재차 이번 회견에도 지목되면서 '편파 진행'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회견 말미에는 윤 대통령 사과의 구체적인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질문이 연이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고 보충 설명을 요청하는 질의에 "국민들께서 좀 오해하시는 부분은 팩트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도 굉장히 많다"고 했다. 팩트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사과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윤 대통령은 "제가 사과를 드리는 것은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불필요한 얘기들, 안 해도 될 얘기들을 해서 생긴 것이니까 그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