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자리한 평심원교회 [편집자 주]
각 지역 교회의 선한 사역을 소개하는 우리동네, 우리교회.
143번째 순서로 강원도 원주시 산골마을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며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평심원교회를 만나본다. 평심원교회는 한 건물 안에 요양원과 교회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요양 시설이 아닌, 어르신들의 신앙과 돌봄을 모두 품은 공동체이다.
평심원교회를 섬기고 있는 민경중 담임목사는 원래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민경중 평심원교회 담임목사민목사는 작곡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며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었고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때때로 얘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민 목사는 군 입대를 앞두고 기도하던 중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군대를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갑자기 그의 입술은 뜻밖의 기도를 쏟아냈다.
그 입술은 민 목사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믿지 않는 사람들의 구원과 믿는 사람들이 바로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된 것이다.
평심원교회의 주일예배 모습민 목사는 이 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손을 얹고 계심을 느꼈고, 본래 음악가로서의 꿈을 추구하던 자신의 삶이 목회로 이어질 것을 예감했다.
이후 목사로서의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명확히 경험한 민경중 목사는 하나님께 "제가 언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까?"라며 간절히 저항해 보았지만, 결국 민 목사의 삶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목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목회자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고 생각의 불일치로 점점 목회현장에서 떠나게 되었다.
미국으로 떠나 세상 속으로 물러 서 있었던 민 목사에게 다시 한 번 삶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평심원을 설립한 아버지의 요청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급히 귀국한 민 목사에게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이제 나 혼자 이곳을 감당하기 힘드니 함께 해 달라"며 부탁했고 결국 민 목사는 평심원으로 돌아와 헌신의 삶을 시작하기로 한 것.
민 목사의 사역은 독특하다.
민경중목사가 평심원 어르신들을 찾아 기도하는 모습평범한 교회에서 성도들을 인도하는 대신, 아버지가 설립한 평심원에 발을 들이며 어르신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요양원과 교회의 경계가 없는 독특한 공동체에서 민 목사는 자신의 신앙과 사역을 더욱 깊이 체화할 수 있었다.
평심원교회는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한 교회로 평심원 자체가 교회이자 공동체이다.
어르신들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민 목사와 직원들은 교인인 어르신들을 돌본다.
정형선 평심원 간호조무사평심원에서 일하고 있는 정형선 간호조무사는 본래 비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며 민 목사의 기도와 예배를 지켜보며 신앙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목사님이 기도해주시고, 예배를 인도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신앙을 가르쳐주시는 것 같아요." 정 간호조무사는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점차 적응하고, 밝은 표정을 되찾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며,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신앙도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고 고백한다.
8년째 평심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문막감리교회 정연숙권사.
정연숙 권사 역시 평심원의 신앙적 분위기 속에서 사명을 품고 일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며 자라온 연숙씨는 결혼 후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돌보며 인내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정연숙 요양보호사(문막감리교회 권사)정권사는 어르신들이 "각자의 믿음 속에서 평안하게 남은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며, "어르신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며 이곳에서의 삶이 주님이 주신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 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신앙 속에서 마지막까지 존엄과 평안을 지키고자 한다.
박갑례 어르신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던 며느리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열심히 댕겨요. 그래서 거기 따라 댕겼죠," 박 어르신은 소박하게 자신의 신앙 여정을 시작한 배경을 말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거동이 힘들지만, 매번 민 목사가 찾아와 기도해 주는 시간이 너무도 고맙다고 했다.
"토요일이면 오셔서 기도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해요"라며, 민 목사의 작은 기도 하나에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냈다.
이금녀 어르신도 민 목사의 방문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매번 민 목사에게 큰 빚을 진 듯한 마음이라고 한다.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감히 저로선 어떻게 아무 보답도 못 해드리는데 이렇게 자주 오시고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요,"
이 어르신의 말 속에는 하나님과 민 목사에 대한 깊은 존경과 고마움이 묻어난다.
인터뷰하고 있는 민경중목사 민 목사는 평심원의 하루하루가 고난과 도전의 연속임을 겸손히 고백한다. 요양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단순히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민 목사는 요양 보호에 필요한 규정과 행정 절차를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정부의 지원과 규정을 따라야 하며,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시간과 수당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하루에 근무하는 시간이 일반 직장과 다르고 주야간 스케줄이 번갈아 돌아가는 요양보호사들의 노동 기준을 맞추는 일은 시설 운영의 큰 어려움이다.
어르신들의 활동 모습어르신들의 인지활동 민 목사는 "요양원 사역이 쉽지 않지만, 어르신들이 편히 지내시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소명이다"며 고된 사역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평심원에서의 시간은 예측 불가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새벽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주일 예배 후 함께 점심을 나눈 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는 어르신도있다고 한다.
민 목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한다.
그런 순간마다 민 목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과 어르신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심원에서의 사역은 민 목사에게 깊은 평안을 준다.
민 목사는 이곳에서 "불일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세속적 욕심과 꿈을 내려놓고, 오로지 어르신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일상을 보내는 민 목사의 삶은 평심원을 하나의 신성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고 있다.
평심원 어르신들의 위로 연주회 모습이와 같은 사역 속에서 평심원은 어르신들의 육체적 돌봄을 넘어 영혼 깊은 곳까지 위로를 전하는 성소와도 같은 곳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민 목사는 최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잠시 떠나있던 음악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쳐 준 김명엽 장로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악보를 펴게 되었다.
김 장로는 민 목사에게 "찬송가를 작곡해 보지 않겠느냐"며 권유했고, 민 목사는 오랜 망설임 끝에 성경의 시편을 기초로 한 찬송가 작업을 시작했다.
시편의 구절을 찬송으로 옮기며 기쁨과 평화를 되찾았다.
민경중목사는 지난달10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채플에서 '민경중 교회음악의 밤' 연주회를 가졌다.지난 10월, 민 목사는 드디어 15곡의 찬송가를 감리교 신학대학 웨슬리 채플에서 발표했다.
서울바하합창단이 찬송가를 연주했으며, 민 목사를 음악의 길로 이끌어 준 김명엽 장로가 지휘를 맡았다.
민 목사의 곡들은 합창곡, 찬송가, 어린이 성가, 독백극 '베드로'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돼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민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통해 영광을 돌리고, 이 곡들이 어르신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소망 한다"고 말했다.
민 목사는 평심원에서의 삶을 다시금 새롭게 다짐한다.
남은 여생 동안 어르신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평안히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민 목사는 "15년 안에 어르신 한 분이라도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어르신들의 인지활동평심원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천국을 닮아 있다.
민경중 목사와 직원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서로의 신앙과 사랑을 통해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이곳은 그 자체로 기도와 사랑의 공동체이며, 작은 성전이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평생을 다해 기도하고 예배하며, 서로를 돌보며 마지막까지 신앙 안에서의 존엄과 평안을 지켜가고 있다.
평심원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무는 진정한 천국으로, 신앙과 섬김이 있는 곳이다.
[영상기자 / 정용현, 영상편집 /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