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로켓배송 과로사 희생자 고(故) 정슬기님 산업재해 승인 판정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 나채영 기자쿠팡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하던 중 과로로 숨진 배송기사 고(故) 정슬기(41)씨의 사망이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된 가운데 유가족과 택배 노동자 단체는 쿠팡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와 정씨 유가족은 11일 서울 강남구 쿠팡CLS 본사 앞에서 '쿠팡 로켓배송 과로사 희생자 고(故) 정슬기님 산업재해 승인 판정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노동 조건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쿠팡 로켓배송 노동자 전반의 문제"라며, "쿠팡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전날 정씨 유족들에게 산재 승인을 통보했다. 정씨의 유족이 지난 7월 근로복지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낸 것에 대한 결과다. 정씨의 사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으로, 대책위는 이런 뇌심혈관계 질환이 대표적인 과로사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책위가 지난 6월 공개한 정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따르면 쿠팡CLS 직원이 "6시 전에는 끝나실까요", "어마어마하게 남았네요"라고 하자 정씨는 "최대한 하고 있어요. 아파트라 빨리 안되네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했다.
정씨의 아버지 정금석씨는 "아들이 과로사 한 지 133일이 지난 어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과로사를 인정하는 요양신청서 승인을 통보받았다"면서도 "아들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 메꿀 수 없다"며 참담함을 호소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쿠팡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며 "쿠팡은 유족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며 "쿠팡은 사람을 연료로 사용하는 로켓 배송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쿠팡이 지난 8월 발표한 개선안 역시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쿠팡은 분류 인력 직고용, 격주 주5일제 시행, 연 2회 휴무 제공 등의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책위의 지적이다. 특히, 분류 작업의 지연으로 인한 부담이 여전히 택배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과로사를 유발하는 심야 노동 규제도 전무하다는 비판이다.
연합뉴스대책위 박석운 공동대표는 "정씨 죽음은 구조적 타살"이라며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로켓배송 핵심 문제로 '클렌징' 제도를 지목하며, "이 상태로 그냥 가면 또 참사가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로사를 유발하는 심야 노동에 대한 규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클렌징 제도는 쿠팡 택배 노동자가 제 때 배송을 하지 못하거나 고객이 요청한 프레시백을 제 시간에 회수하지 못할 때, 맡은 지역에서 배송 업무를 그만두게 되는 제도다.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은 "쿠팡이 수십 차례의 기자회견과 항의를 받아왔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며 쿠팡의 경영 방식을 비판했다. 안 소장은 "더 이상 사람이 쓰러지지 않는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며 "고 정슬기님의 산재 승인을 계기로 다시는 쿠팡에서 정말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지 않도록 전면적인 개선과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국택배노조 김광석 위원장은 "쿠팡이 단순히 말로 사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쿠팡이 "우리 시스템의 문제로 고인이 돌아가셨다"고 인정하고, 제대로 된 개선책을 들고 해야 진정한 사과"라고 말했다. 그는 "쿠팡이 지금 내놓은 소위 '개선안'들을 볼 때, 우리는 쿠팡의 지금 행보가 그저 소나기를 피하고 미봉책으로 덮으려는 꼼수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며 "의학적 검토에 기초한 새벽배송 제도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