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세법 개정안 브리핑. 연합뉴스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상속세 관련 법 조항을 대폭 개정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내년 상반기 중 '유산취득세'로 상속세 체계를 전면 개편하도록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역대급 세수펑크 위기 속에 '부자 감세' 논란에도 연거푸 상속세 감세를 단행하려는 이유는 여소야대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림수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정례기자간담회에서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 유산취득세 법률안의 국회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금년에는 연구 용역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유산취득세 세부 개편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부의 세부 개편방안을 토대로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현행 상속세는 '유산세(estate tax)' 방식으로, 사망·실종한 피상속인의 유산 총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한다. 반면 '유산취득세(inheritance tax)'는 상속인들이 물려받은 유산을 기준으로 각각 과세하는데, 이 경우 재산이 잘게 쪼개진 다음 계산하기 때문에 그만큼 누진세율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체계로 바꾸는 작업은 정부 숙원사업 중 하나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22년 10월, 기재부는 유산취득세 태스크포스(TF)로 '조세개혁추진단'을 출범해 상속세 체계 개편안을 마련해왔다. 또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당인 국민의힘은 상속세 부과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변경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발표했던 세법개정안에 상속세 관련 개정안들이 대거 담겼지만, 유산취득세 관련 내용은 쏙 빠졌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작업이 상속세 체계를 전면 수정해야 하는 대작업이기 때문에 늦어졌다고 설명한다.
비록 유산취득세 내용이 빠졌지만 상속세 개정안은 이번 세법개정안의 '주인공'으로 꼽히며 주목받았다. 정부는 ①일괄공제 관련, 과세표준 구간 중 최저세율 적용 구간의 기준을 1억 원 이하에서 2억 원 이하로 올려 납세 대상을 줄이고 ②최고세율 50%를 적용받던 30억 원 초과 구간을 삭제해 10억 원 초과시 40% 세율 적용 구간을 최고세율 구간으로 감세하고 ③1인당 5천만 원까지 공제됐던 자녀 세액공제 금액을 5억 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내놨다.
그런데 내년 상반기부터 추진할 유산취득세로 제도가 바뀌면, 이번 세법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를 떠나 일괄공제 자체가 사라질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지금은 돌아가신 분을 기준으로 유산세 형식이기 때문에 일괄공제를 하고 있는데, 논리적으로 (상속인을 기준으로 개별 공제하는) 유산취득세를 하고 있는 나라에는 이런 일괄공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현재 납세 편의 측면에서 적용하고 있는 일괄공제는 유산 취득세 전환 시 폐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국회에 올린 현행 세법개정안을 '시한부 법안'으로 취급하는 발언이다. 어차피 유산취득세로 대대적인 개편을 벌이려는 정부가 굳이 올해 상속세 개정을 따로 추진한 이유를 놓고, 여소야대 국면을 피해 '부자 감세'를 달성하려는 꼼수라는 말도 나온다.
상속세는 대표적인 부자들의 세금으로 꼽힌다. 노후를 준비하기도 어려운 서민들은 부채 등을 정리하고 나면 배우자·자녀에게 상속할 재산 자체가 많지 않다. 유산이 현행 상속세 일괄공제 기준인 5억 원을 넘지 않으면 상속세는 내고 싶어도 못 내는 세금이다.
게다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재산가액 기준 과세 대상 중 1억원 이하의 총결정세액은 전체의 0.05%에 불과했지만, 30억 원 초과 구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 동안 60~70%대를 오갔다. 애초 서민·중산층과는 거리가 먼 세금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대표적인 부자들의 세금이다보니 여론의 질타를 피해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작업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가깝다. 실제로 상속세는 2001년 과세표준·세율이 소폭 변경됐을 뿐, 1997년 제정 이후 큰 틀에서 변화가 없었다.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상속세가 주목받았던 이유도 21년 만에 세제를 대거 바꾼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올해는 역대급 세수펑크를 빚었던 지난해보다 더 세수 상황이 열악하다. 기재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7월 재정동향'에 따르면 정부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83조 2천억 원이나 적자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87조 원 적자를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동안 최소 100조 원 이상 적자를 볼 참이다.
이처럼 열악한 재정 상황에도 '부자 감세'를 단행했지만, 올해 상속세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도 상당하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각종 세액 공제 상향안을 내놓으며 상속세 공제 경쟁에 나설 정도다.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과세표준 구간에서 최하위 구간과 최상위 구간을 나란히 줄여 '균형'을 맞췄고, 핵심 내용인 자녀공제액을 10배나 상향하면서 내세운 '저출생 시대에 다자녀에 세 혜택을 준다'는 명분도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정부 계획대로 올해 상속세 개정에 이어 내년 유산취득세 개편까지 함께 이루어질 경우, 그 결과는 지나친 부자 감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어차피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폐지되는 일괄공제 기준은 제쳐두면, 관건은 자녀 공제금액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유산취득세 개별공제 방식의 주요 기준점이 될 자녀공제를 10배나 상향한 채로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감세 효과가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유산취득세로 간다는 것 자체가 동일한 세율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세금이 확 줄어드는데, 이번에 상속세를 개편한 후 유산취득세로 간다면 몇 배는 더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며 "올해 상속세를 감세하고 내년에 유상취득세로 또 줄인다면 '슈퍼 리치'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감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유호림 교수도 "기존 상속세 체제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기본공제 금액이 너무 적은데, 자녀 공제를 인상한 다음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상속세 부담을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며 "결국 올해 1차로 자녀 공제를 인상하고, 내년에 2차로 유산취득세형으로 전환해 확실한 세 감소 효과를 거두려는 프레임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내년에 유산취득세로 바꾸면서 한번에 자녀 공제 기준도 인상하면 정치적 부담이 크니 자녀 공제금액부터 올린 후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려는 밑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지금 더불어민주당도 자녀 공제금액 인상안을 내놓았는데, 여당과 기재부의 전략적 포석에 야당이 말려든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