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아파트 앞에서 30대 남성이 장검으로 이웃 주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검 소지 허가·관리 제도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도검의 경우 운전면허가 있으면 신체검사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고, 갱신 규정도 없었다. 쉽게 말해 한 번 소지 허가가 떨어지고 나면 이후 소지자가 이상 증세를 보여도 관리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도검 허가' 받은 피의자…최근 이상증세로 112신고도 있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 29일 오후 11시 27분쯤 은평구에 있는 아파트 정문에서 장검으로 이웃 주민을 살해한 30대 남성 A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가 사용한 흉기는 칼날 75cm, 총 길이 100cm에 이르는 장식용 일본도였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에 따라 길이가 15cm 이상인 칼·검·창·치도(雉刀)·비수는 '도검'으로 분류된다. 보유하려면 경찰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A씨는 올해 초 경찰로부터 도검 소지 허가를 얻었다. 하지만 평소 A씨가 이상행동을 했다는 아파트 주민의 증언과 A씨의 경찰 신고 이력 등이 알려지면서 도검 소지가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심지어 이번 사건 전에도 A씨가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거나 이상행동을 보여 112신고가 접수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상증세 있는데 왜 못 막았을까?…규정 곳곳에 허점
총포화약법 제13조에 따르면 심신상실자,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코올 중독자 등은 총포와 도검을 소지할 수 없다.
이에 총포화약법 시행규칙에서는 처음 소지 허가를 신청할 때 정신질환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발급받은 신체검사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도검의 경우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신체검사서를 첨부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체검사서로 정신질환 여부 등을 확인하는 총포와 달리 도검은 운전면허로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총포는 현행법상 3년마다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하지만 도검은 별도의 갱신 규정도 없다. 소지자가 이후 정신 질환 등을 앓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일 경우 관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도검 소지 허가 및 갱신 등에 관한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명예교수는 "(개인이 소지했다고 해도) 총기류는 파출소, 지구대 등에 보관이 돼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측면이 있지만 도검은 그렇지 않아 더 위험하다"며 "허가 기준을 엄격하게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운전면허를 (도검의) 소지 허가 기준으로 인정해 주는 등 도검 허가 및 관리에 사각지대가 있다고 본다"며 "소지 허가 이후 소지자의 정신적 건강 상태 등 기타 문제가 생길 수 있음에도 갱신 시 특정 기준이 없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도검 허가 및 관리 사각지대를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1년 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등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국의 치안 전략을 점검해서 근본적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세한 범행 동기 파악을 위해 프로파일러도 투입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