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아동병원협회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아동병원의 소아응급실화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좌측부터 정성관 부회장(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과 최용재 회장, 이창연 부회장(부산 아이사랑병원장). 이은지 기자"(아동병원이) 대학병원처럼 응급실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고 배후진료도 시켜줄 수 있는데요. 거기 걸맞는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지금껏 소아(의료) 관련 정책을 만들어낸 분들은 성인 진료를 보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소아진료체계가 나빠지고 붕괴되기까지 바뀐 게 하나도 없거든요.
이제는 '어린이건강보험법'이란 걸 만들어서, 아이(진료 부문)는 따로 떼내어 저출생 정책 등에 통합해 관리해줬으면 합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최용재 회장(의정부튼튼어린이병원장)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동병원의 소아응급실화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권역 내
소아환자들의 최종치료를 맡는 상급종합병원 상당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 보니, 아동병원들이 대학병원 등으로 이송돼야 할 준중증 이상 환자들까지 떠맡고 있다는 호소다.
현행 의료체계상 2차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아동병원들은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3~5등급 정도 환자는 무리 없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중등증을 넘어선 1~2등급의 경우, 아동병원에서 1차 처치를 하더라도 수술·입원 등 최종 치료를 위해서는 3차 병원으로 전원(轉院)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 회장은 "일반적인 아동병원이라면 KTAS 3~5등급 정도인 고열·장염·폐렴·열성경련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된다"며 "(다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는 호흡곤란 중에서도 호흡부전이라든가 심정지 등의 상황이 되면 감당이 곤란하다"고 부연했다. 또 "(중증·응급도가) 1~2등급이거나 (그에) 임박한 상태면 저희도 볼 수가 없어서 타 병원으로 옮기는데 '원거리 전원'이 이뤄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동병원협회가 지난 27~29일 회원 병원 117곳 중 50곳이 응답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동병원 '10곳 중 9곳'은 사실상 소아응급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구급차로 전원되는 응급환자 수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아동병원 56%는 '5명 이하'라고 답했고 △'6~10건' 22% △'11~15건' 4% △'16건 이상' 6%로 각각 집계됐다. 한 아동병원의 경우, 월별 119 전원환자가 120명에 달하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병원을 찾은 환자들 중
치료 난이도가 높은 환아 비중이 60% 이상에 이른다는 점이다. 지난 한 달간 구급차로 이송받은 환자 가운데 준중증 이상 환자가 5명 이하라는 답변은 52%였고, 6~10명이라는 병원은 10%로 나타났다. '0명'이라고 대답한 아동병원은 38%에 그쳐,
소아응급실이 없는 지역 아동병원들이 의료사고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구급차로 내원한 중증소아를 다시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기 매우 어렵다는 응답은 72%에 달했다.
환자를 옮겨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받아줄 수 없다'며 고사하는 상급병원이 대다수란 얘기다.이들 병원은 중증 위급환자를 대학병원에 보낼 때 한 환자당 연락해본 병원이 몇 군데인지 묻는 항목에 90%가 '5건 이하', 6%는 '6~10건'이라고 답했다. 특히 환자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전원된 비율도 50%로 나타났다.
30일 '아동병원의 소아응급실화 대책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이홍준 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는 "얼마 전 한 원장님께서는 누가 봐도 큰 병원에 가야 하는 환아의 이송을 위해 본인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대학병원 교수님 열 분께 전화를 돌렸다고 하더라"며 "공식적인 루트로는 (전원이) 도저히 되지 않으니 '제발 좀 받아달라'고 읍소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정책이사는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고 전공의 이탈 등으로 인해 저희가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3차 병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그런데
중증환자가 한 명 딱 들어오는 순간 외래 등 모든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올스톱'이다. 50명이든 100명이든 대기 중인 환아도 다 놔두고 그 환자 한 명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보호자 등의)
컴플레인 등은 그 이후 저희의 몫"이라고 토로했다.
소아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의료체계가 무너진 것은 최근 의·정 사태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란 게 아동병원들의 전언이다. 직접적 계기가 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명맥 유지도 쉽지 않아진 가운데, 이마저도 현재 전공의 대부분이 사직 예정이다 보니 '회복 불능' 상태라고 협회는 전했다.
최 회장은 "일단 기본적으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과 비슷한 수준의 인적·물적 지원을 정부가 해줬으면 좋겠다"며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게 있어도 저희 규모에선 유지도 어렵다"고 밝혔다.
정성관 아동병원협회 부회장(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도 아동병원이 '대학병원화(化)'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은 아니라고 했다. 정 부회장은 "예를 들어 저희가 소아암 환자 진료를 본다거나 아주 고난이도의 수술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며 "대신 환자들의 접근성을 더 용이하게 하는 취약시간대 진료라든가, 준중증일 때 더 악화되지 않게끔 개입하는 부분을 (당국이) 인프라적 차원에서 우선순위에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양성을 위한 '전공의 의무 할당제'를 고려해 달라는 제언(이창연 아동병원협회 부회장)도 나왔다.
최근 전담부처 신설 등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저출생 문제 대응을 위해서라도 '태어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구축해 달라는 게 아동병원들의 요구다.
최 회장은 "소아과에 오는 아기 엄마·아빠들은 이른바 '스타팅 패밀리(Starting Family)'다. 사회 초년생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다"며 "이 사람들이
마음 놓고 안심하고 애를 키울 수 있게 (지원)해줘야 될 게 아닌가. 저출생 예산을 이상한 데 쓰지 말고, 아이들한테 써 달라"고 호소했다.
일요일인 30일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춘계 학술대회를 연 대한아동병원협회.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