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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만원인데"…폐지값 '반토막'에 휘청이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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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유리지갑'은 물가에 뒤쳐진 지 오래다. 발길 끊긴 가게 문을 여는 '나홀로' 사장님들도, 헐값이 된 폐지를 구하러 나선 노인들도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불황은 늘 약자들에 더 가혹하다. CBS노컷뉴스는 통계 속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통해 2024년 대한민국 불황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불황이 덮친 사람들③]
불황 심화로 버려지는 재활용품 크게 줄어
경기 죽으면서 고물값도 줄줄이 '반토막'
"국밥 한 그릇 만원…종잇값은 왜 이래"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실제 매입단가'
"헐값이어도 폐지 줍겠다"는 노인 90%
"빈곤층에 더 가혹한 불황…지원 두텁게"

경기도 내 한 도심에서 폐지와 고철 등을 리어카에 싣고 이동 중인 최씨 모습. 박창주 기자 경기도 내 한 도심에서 폐지와 고철 등을 리어카에 싣고 이동 중인 최씨 모습. 박창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불황 앞에 장사 없다"…사장님에서 직원이 된 사람들
②'경제 생태계 변화'에 베테랑 자영업자들도 쓰러진다
③"밥값 만원인데"…폐지값 '반토막'에 휘청이는 노인들
(계속)

"이 짓도 이젠 돈이 안 돼. 2년 전만해도 먹고 살만은 했는데…"

공사판 일용직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최돈익(80대‧가명)씨는 5년 전부터 리어카를 끈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 인력시장에서조차 밀려난 그가 선택할 수 있던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코로나19 때만해도 괜찮았다. 버려지는 종이며 고물들도 많았다. 폐지값도 나쁘지 않아 1kg에 100원 가까이 될 때는 하루에 5만 원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심해진 불황은 최씨의 생명줄을 조여오고 있다. 장사가 안 되다 보니 가게들에서 나오는 폐지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일거리가 준 것도 문제지만, 최씨의 깊은 시름의 이유는 따로 있다. 절반으로 떨어진 폐지값이다. 단골 거래처인 재활용센터에서는 '폐지를 찾는 사람들이 없다'며 폐지값을 50원까지 낮췄다.

최씨는 "물가는 비싼데 종잇값은 왜 이러냐"며 "㎏당 20~30원 정도라도 올려주면 조금 나을 텐데 너무 답답하다"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국밥 한 그릇에 1만원인데…폐지값은 왜 이러냐"


최씨가 오르막길에서 재활용품들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있다. 박창주 기자  최씨가 오르막길에서 재활용품들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있다. 박창주 기자 
더욱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물가는 최씨와 병든 아내가 하루 세 끼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 부부에게 식당밥은 엄두도 못 낼 사치다. 폐지와 고물을 찾아 멀리까지 헤매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다.

그는 "국밥 한 그릇에 만 원씩 하는데 어떻게 사먹느냐"며 "몸은 더 고되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땡볕을 뚫고 30여 분 손수레를 끌어 도착한 재활용센터. 무게측정기에 리어카가 올려졌다. 460㎏. 3만 원 남짓, 평소보다 큰돈을 쥔 날이었다.

최씨는 "아는 사장님이 버려준 고철 덕분"이라며 "오늘은 두 번 다시 없을 '운수 좋은 날'"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불황 심화→고물값↓…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실제 매입단가'


최씨가 재활용센터에서 자신이 모은 재활용품들에 대한 거래를 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최씨가 재활용센터에서 자신이 모은 재활용품들에 대한 거래를 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
지속된 경기불황과 고물가는 빈곤층에게 더 가혹하다. 특히 재활용업계의 가장 낮은 유통단계에 뛰어든 폐지 수집 노인들의 고통은 우리 경제 하부 구조의 위기를 보여준다.

생산활동의 감소는 생산의 흔적인 고물 감소를 초래하고, 고물값의 폭락은 재활용업체와 고물을 줍는 이들의 생존 위기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반복한다. 골목을 뒤져 폐지를 줍던 노인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같은 현상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재활용가능자원 가격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평균 폐골판지 매입 단가(원/㎏)는 최근 5년 사이 최고치였던 2022년 122.2원에서 지난달 82.2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전국 평균 폐신문지 매입 단가(원/㎏)도 127.6원으로 2년 사이 10% 떨어졌고, 폐금속과 폐플라스틱 등 여느 재활용 자원들도 대부분 하락세다. 고물 수집 노인들의 소득이 계속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최종 소비 단계의 폐지 가격 하락이 자연스레 폐지 매입 단가 저하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폐지를 주워 재활용센터에 팔면 중간상인(압축상)을 거쳐 제지업체로 넘어가는데, 제지업체가 정하는 가격이 떨어지면 이와 연동해 폐지 매입 단가도 차례로 낮아지는 구조다.

결국 마진(차익) 발생을 감안하면 첫 단계에서 노인들이 파는 폐지 가격은 중간 유통단계를 기준으로 삼은 통계치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경기도내 지역과 업체별 차이는 있지만, 재활용센터에서 매입하는 폐지 단가는 ㎏당 50원 안팎의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날 최씨가 거래한 재활용센터 사장은 "경기가 살아나 물건이 잘 나가야 제 값을 받는데, 물건 자체가 안 나가고 있다"며 "코로나 때도 안 좋았지만 지금은 더 안 좋아져 중간업체들이 거의 오지도 않는다"고 털어놨다.

"시간당 1200원 수익…그래도 폐지 줍겠다"는 노인 90% 육박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거 노인 실태조사' 그래픽.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거 노인 실태조사' 그래픽. 보건복지부 제공
폐지 수집 노인들의 생활고가 숫자로 드러난 정부 통계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거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은 4만2천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주일 중 6일·하루 6시간 안팎 폐지 수집 활동을 해 한 달 평균 15만9천 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당 1226원을 벌어 지난해 최저임금인 9620원의 13%에 그쳤다.

기초연금 등을 포함한 폐지 수거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74만2천 원으로, 전체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129만8천 원)의 57% 수준에 불과했다.

폐지 수거 노인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 일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54.8%)은 '생계 유지'를 위해 폐지 수집에 나섰다고 답했고, 다음은 용돈 마련(29.3%), 건강 관리(9.1%) 순이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여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폐지 수집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타 직종 구직 곤란'이 38.9%로 가장 많았고, 현금 선호(29.7%) 등이 뒤를 이었다. 계속 폐지를 줍겠다는 응답률은 90%에 육박했으며,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폐지 납품 단가 하락(81.6%)을 꼽았다.

이번 실태조사는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였다.

"빈곤층에 더 가혹한 불황…실질적 지원 두텁게 해야"


전문가들은 빈곤층일수록 경기·물가에 받는 충격이 더 큰 만큼, 소득 수준과 생활여건 등에 관한 세밀한 기준을 마련해 보다 두텁게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노인들이 자립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자리를 발굴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노인 가입률 저조하고 기초연금 70% 수준 보장하더라도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상적 생활 유지를 가능케 하는 수준으로 올릴 수 있도록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논의를 해야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전 사무국장)도 "물가 상승은 기초 생활비 관련 항목들에서 두드러지므로 빈곤층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폐지 수집 노인들에겐 더 치명적"이라며 "소득활동(폐지 수집)을 하면서도 기초 생활을 보조할 수 있는 수준의 공공 수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한 기준을 개인별, 상황별로 대폭 완화하고 다각화해 복지망을 보다 두텁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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