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자본시장 동향. 한국거래소 제공윤석열 정부에서 야심차게 밀어온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이번 달 들어 모두 공개됐다. 한동안 밸류업 수혜주로 꼽힌 종목들이 힘을 받기도 했지만 증시는 다시 박스권에 갇힌 상황이다. 전세계 증시가 신고가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증시만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정부가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통제적이고 변칙적이라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확정된 밸류업 방안, 자발적 공시강화에 방점
스마트이미지 제공지난 2일 금융위원회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안을 공개한 데 이어 한국거래소는 27일 기업가치 제고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발표했다. 골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미래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경우 세제 혜택을 주거나 감사·감리 이후 조치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계획안이 공개된 후 밸류업 평가 여부가 주주환원 정도에만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날 거래소가 확정한 가이드라인에서는 R&D(연구개발) 투자와 수익성 확대, 성장성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밸류업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건전한 시장 압력을 통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며 "주주환원뿐 아니라 기업이 상황에 맞게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주주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게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공시 강화 당연한 이야기…'플러스 알파' 불명확
증권가에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주주 친화적인 공시를 강화하고 환원 정책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해당 대책을 통한 '밸류업'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진 않는 분위기다.
국내 증권사의 한 임원은 "기업에 바뀌는 공시의무를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점은 향후 밸류업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시장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적절하다"면서도 "초반 기업들의 참여 유인이 약해 얼마나 빠르게 실효적인 변화가 일어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상장기업의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를 돕기 위한 주요 인센티브 방안. 한국거래소 제공가이드라인을 보면 주주환원을 확대한 기업에는 법인세·배당소득세 일부를 경감하는 세제 혜택이 적용되고 모범적인 밸류업으로 표창을 받은 기업에 대해선 세무·회계, 상장·공시, 홍보·투자 등 3개 분야에서 8종의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앞서 이같은 유인책에 대해 기업경영 관행이나 문화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최종 가이드라인에서 더 추가된 내용은 없었다.
"밸류업 전에 디스카운트 요인부터 확실히 없애야"
당장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주기 어렵다면 디스카운트 요인부터 확실히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공정한 자산 형성을 방해하는 불법 공매도나 꼼수 상장 같은 문제를 적시에 시장에서 걸러내겠다는 대책도 내놨지만 근본적인 디스카운트 요인은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에서 공매도를 다뤄온 방식 자체가 정치적 요인으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며 "일부 불법 공매도 주체를 걸러내는 것 뿐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사견'을 전제로 공매도 일부 재개를 언급한 후 대통령실에서 "(공매도 근절 시스템이 마련될 때까지) 재개는 없다"고 반박한 것을 두고 나온 실망 섞인 반응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밸류업이 되려면 어쨌든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돼야 하는데 정부가 5천원짜리 주식이 실제론 1만원짜리라고 홍보한다면 기존 주주는 당연히 1만원이 될 때까진 매도를 안하지 않겠냐"며 "제때 적절하게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시장이라는 문제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가치를 잘 포장하는 것 이전에 본질적인 가치가 개선되도록 이사회나 영업관행 등을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자연스레 거래량이 풍부해지도록 유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