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유도선, 잡혀갈 각오로 칠했죠"…도로공사의 11년 걸린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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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차장 인터뷰
윤 차장 "자녀 그림 그리는 모습에서 영감"
정부 공로 인정해 올해 국민훈장 수여
"모리셔스에도 제도 전하려 노력 중"

호남고속도로 장성분기점 노면에 초록과 핑크색 라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도로공사 제공호남고속도로 장성분기점 노면에 초록과 핑크색 라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도로공사 제공

"국토부에서는 '노면색깔 유도선'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저의 원작 명칭은 '방향 유도 컬러레인'이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 관광국가인 모리셔스에 파견돼 도로교량 관련업무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설치하려고 뛰고 있어요. 모리셔스 당국자들은 '혁신사례긴 하지만 여기서는 안되요 법이 없어요 관련 규정도 없구요'라며 고개를 저어요"

CBS노컷뉴스는 노면색깔유도선의 창안자로 제도시행 이후 교통사고가 크게 감소하는 등의 공적을 인정받고 있는 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한 것을 계기로 직접 인터뷰를 했다.

13년전 군포지사 근무시절 안산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 목포행 고속도로를 타는 어이없는 경험을 했던 윤석덕 차장은 그 길로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2011년 3월 안산분기점에서 승용차와 화물차가 뒤엉키며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었고 그 끝에 화물차가 구조물을 들이받아 1명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윤 차장의 상사였던 A지사장은 윤 차장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때 윤 차장의 다짐은 결심이 됐다. 뾰족한 대책이 없을까 매일 고심을 거듭하던 그의 머리도 무거워졌다. 대책이란게 뻔해서 무얼 내놔도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만한 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그러던 어느날 퇴근해 거실에서 자녀들이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 그림을 그리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따라만 가면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선을 생각했지만 도로전문가인 그에겐 또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바닥에 컬러 레인을 그리는 걸 누가 허락해줄까'라는 생각이 갈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우군이 있었다. 보고를 받은 지사장이 OK였고 업무상 알고 지내던 고속도로순찰대 경찰관이 '도로에 색칠하면 사고를 줄인다는 거, 괜찮은 생각이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 호법분기점에 설치된 노면색깔유도선을 가리키고 있다. 윤석덕 차장 제공 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 호법분기점에 설치된 노면색깔유도선을 가리키고 있다. 윤석덕 차장 제공 
윤 차장은 고속도로순찰대로부터 도색이 명시된 교통제한협의서를 얻어 내는데 성공해 서서울 영업소~안산분기점 구간에 핑크와 초록색 라인을 첫 도색하게 됐다. 2011년 5월 3일이다. 막상 시행해보니 사고도 줄고 유용성이 입증됐다. 불법임에도 도로공사 지사들이 잇따라 도색에 나섰고 2014년까지 전국 70곳으로 확산됐다.

여기에 이르자 도공 본사는 궁리 끝에 "고속도로에만 도색을 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 경찰청의 위법논리에 대응했다. 이어 국토부가 2017년 노면색깔유도선의 유용성에 대한 용역을 실시해 연말 '노면색깔유도선 설치관리 매뉴얼'이라는 걸 만들면서 위법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도로공사 김천 본사. 도로공사 제공 도로공사 김천 본사. 도로공사 제공 
법은 항상 변화와 혁신을 뒤따라 가는 것이 이치다. 노면 도색이 사고예방에 유익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국회에서도 입법에 나서 2021년 4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첫 설치된 지 11년만이다.
 
[이하 윤석덕 도로공사 차장과 일문일답]

-노면색깔유도선 아이디어가 채택돼 정책으로 입안되고 상까지 받게된 걸 축하드린다. 훈장 받은 소감은?
=워낙 큰 상이고 제가 이상을 받을만한 공로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분한 상이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여러분이 노면색깔유도선의 혜택을 보고 많이 칭찬해주셔서 이상을 받게 됐다 생각한다. 국민여러분에게 이 상을 드리고 싶다.
 
-노면색깔유도선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언제였나?
=2009년 인천지사, 2011년 군포지사에서 근무했다. 도로공사 인재개발원이 동탄에 있어서 거기에 교육받으러 한번씩 갔다. 경부선, 영동선, 서해안선, 외곽선을 타고 인천에 가야한다. 영동선에서 무심코 빠지면(우측)서울쪽이 나온다. 이 루트에서 안산분기점을 경유하는 서해안선 목포방향은 일방으로 돼 있다. 우측으로 빠지면 무조건 목포행이다. 당시 목포방향으로 잘못 탄 것이다. 문제 있다고 생각했고 곧 개선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도로기술자인 제가 이럴 정도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때다.
 
-사고나 다른 계기도 있었나?
=인천지사에서 군포지사로 2010년에 인사 이동됐다, 2011년 3월에 둔대분기점(안산분기점 가까이다)에서 사고가 났다 1차로 승용차와 끝차로의 화물차가(강릉방향 죄회전) 서로 실랑이를 하다 승용차는 빠져나갔지만 화물차는 구조물에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사망사고였다. 지사장은 도로담당인 저를 불러서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지사장의 요청은 초등학생도 알수 있는 쉬운 대책이었다. 둔대분기점의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막상 지시를 받고보니 숙제가 됐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해서 보니 아이들이 거실에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게 보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바닥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때 '아 (도로에)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었다. 그림을 누가 그리게 해주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 지사장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도로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더니, 그래 그리면 되겠네라고 동조해 주셨다. 그 뒤로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한 것이 제도가 됐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제도화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도로에는 도로교통법상 칠할 수 있는 색이 있다. 하이패스는 하늘색, 차로에는 흰색, 중앙분리대에는 노랑색 등이다. 이를 포함해 4가지 색상만 칠할 수 있다. 다른 색은 법위반이다. 우선 여러사람에게 도로에 칠하겠다고 했더니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하지마라'고 말렸다. "니가 왜 그 위험을 감수하냐 따라가다 사고나면 비용청구할텐데 모험은 안하는게 좋다" "너무 앞서가지 마세요 저 같으면 안할 겁니다" "경찰청은 가만 있겠냐 잡혀갈 수도 있어" 등 부정적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경찰청에 물어봤다 고속도로순찰대 임용훈 경사에게 전화로 "도로에 색깔을 칠하면 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말에 그분은 "괜찮네요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받아줘 고맙더라
교통제한협의서에 우회전은 '노랑' 좌회전은 '초록색'으로 색깔을 적어 냈고 이 건에 한해 승인한다는 답과 함께 고순대의 승인을 얻었다. 서서울 영업소~안산분기점 구간에 도색이 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핑크의 시인성이 더 좋다는 생각을 버리기 아쉬워 마지막 순간 노랑을 핑크색으로 하겠다는 의견을 냈고 2011년 5월 3일 처음으로 안산분기점에 노면색깔유도선이 도색됐다. 또라이 소리들을 각오를 하고 도색을 추진했다.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혹시 우여곡절은 없었나?
=도로공사 서울경기본부 내 창의발표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했을 때 "법으로 안되는 걸 왜 하려고 그래"란 부정적 견해가 나왔지만, 발표회 후 장려상까지 주고 또 톨게이트 캐노피 앞에 간판을 달아서 보완하라는 감수까지 해줘서 힘이 됐다. 그러나 본사에서 기각이 됐다. "법을 위반해서 설치한 걸 등급을 줄수 없다"는게 기각 이유였다. 하지만 회사내부에서 입소문을 타고 판교분기점에서 두 번째로 채택되는 등 확산조짐도 나타났다.
 
-본사 반대 후에 어떻게 진전이 됐나?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군포지사와 화성지사 담당자가 지나다니면서 (안산분기점을)봤다. 이 담당자가 교통처 근무당시 사장된 아이디어의 출품을 권유해 출품한 것이 채택됐다. 당시 초록색 분홍색은 살리고 졸음쉼터(연두)를 하나 더 넣어서 도공 내부문서로 만들어졌다.
이를 기점으로 2014년까지 전국 70곳으로 설치장소가 늘어났다. 아마도 (법위반으로)잡혀가려면 먼저 한 사람이 잡혀가겠지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경찰청에서는 불법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궁리 끝에 도로공사 본사에서 "고속도로에만 도색을 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 정책이 공식채택됐다.(2014년)
 
-방침이 확산된 계기가 됐겠다?
=도로공사 지사별로 도색이 확산되자 국토부가 2017년 1년간 아주대에 노면색깔유도선의 유용성에 대한 용역을 줬다. 그 결과 2017년 연말 '노면색깔유도선 설치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이 국토부에서 발간됐다. 도로교통법이 바뀐 건 아니지만 이제 잡혀갈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언론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신문사와 방송 인터뷰에 나가게 됐다. 2020년에는 유키즈란 프로에도 나갔고 2021년 4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설치된 지 11년만이다.
 
-해외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걸 인지했나? 참고하진 않았나?
=2008년 일본에서 아라마치 교차로가 최초라는 논란이 있었고 베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저는 일본에 가본적이 없고 일본글도 모른다. 일본을 참조하지 않았다. 일본은 바닥에 컬러포장을 하는 거지만 우리는 바닥에 도색하는 것으로 개념 자체가 다르다.
 
-제도 시행 이후 개선된 점은?
=도색의 폭이 1m로 조금 넓어서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미끄럽다는 지적이 있어 45cm로 줄였다. 아주대 용역 이후이다. 보완책으로 도로공사에서 안 미끄러지는 도료를 개발 시공중이다.
 
-노면색깔유도선 시공 후 개선된 점은?
=2014년까지 설치된 76곳의 데이터를 2017년에 도공에서 통계분석해 봤다. 분기점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40%감소, 인터체인지는 22%감소, 평균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사고분석을 한 거를 보면, 2010년 안산분기점 발생 교통사고 25건인데 2011년에는 3건이다. 88%감소한 것이다. 이걸 보면서 저는 더욱 법위반 사항 해소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도로공사가 집중 홍보중인 사고고장시 대피요령. 한국도로공사 제공도로공사가 집중 홍보중인 사고고장시 대피요령. 한국도로공사 제공
-도로공사 내부에서도 아이디어가 많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평소 업무에 어떤 태도는 어떤편?
=지금 저는 아프리카 모리셔스에 현장 해외근무중이다. 뜬금없는 소리냐 할 것이지만 항상 뭔가 도전을 하고 내가 내 몫을 하고 있는 자리로 찾아가고 싶다. 나로인해 일이 발생하고 진행되는 곳으로 내가 주체가 돼서 내일을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혁신이라는 거는 한순간 거창하게 시작해서 금방 이뤄지는 게 아니고 서서히 투자해서 자기가 미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할 수 있으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꺼번에 끝내려 하지말고 주도적으로 차근차근 꾸준하게 해가는게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도로공사 본사에서는 요즘 사고.고장 시 대피행동요령을 홍보중인데, 바로 '비트밖스'다. 비상등 켜고 트렁크 열고 밖으로 대피 스마트폰 신고의 줄임말인데 우물쭈물하다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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