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새벽 2시에 김기남 전 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영구를 찾아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북한의 괴벨스'로 불리는 김기남 전 선전담당 비서가 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새벽 2시에 주요 간부들과 함께 고인을 조문했다.
김정은을 국가장의위원장으로 하고 김덕훈 조용원 최룡해 최선희 김여정 등 주요 간부 100명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도 구성했다. 김기남의 장례를 국장으로 진행할 만큼 예우를 다하는 셈이다.
북한 매체에 실린 부고에는 김기남이 김일성에서 김정일으로 이어지는 "당의 영도계승시기",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뚜렷한 공적을 쌓아올렸다"고 평가했다.
통일부의 '북한 주요인물 정보 2023'에 따르면 김기남은 지난 1972년 노동당의 정치이론잡지 '근로자'의 부주필, 74년 책임 주필, 76년 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책임 주필로 일했다.
김정일은 지난 1974년 2월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 겸 당·정·군 담당 비서로 선출되며 후계자로 결정됐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 김기남이 근로자와 노동신문의 책임주필을 역임하며 후계세습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울러 지난 201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를 김정은과 함께 호위한 7인 중 한 명이다. 숙청 또는 해임된 장성택 리영호 우동측 등과 달리 정치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 현쳘해가 군부 장악과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김기남은 선대의 선군정치에 거리를 두며 당 조직을 장악하고 정상화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특히 지난 2005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8·15민족대축전 참석 차 서울을 방문했는데, 이 때 6·25전쟁 이후 북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 인사들이 추후 북한을 방문할 경우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 참배를 하도록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고인은 또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 조문단장을 맡아 서울을 방문해 조문했다.
그는 조문을 마친 뒤 귀환일정을 미뤄가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예방하고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선전담당 비서 등으로 일하며 북한의 3대 세습과 우상화를 지휘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노동신문 등에 실린 그의 부고와 약력 등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한 구절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남북에 대해 동족이 아닌 적대적 2국가로 규정하며 통일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정책기조를 반영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