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친 육선엽(가운데)을 놀리는 강민호(오른쪽)와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제공숨은 가빴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렸다. 고참 선배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 1군 데뷔전을 치른 막내를 놀리기에 바빴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신인 투수 육선엽(18)이 꿈에 그리던 프로 마운드를 밟았다. 긴장의 연속이었어도 데뷔전을 무실점으로 끝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선배들과 다른 팀 친구들은 육선엽에게 농담 섞인 축하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육선엽은 지난 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첫 1군 등록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육선엽을 향한 프로 팀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140km 후반대 속구에 여러 구종을 구사하는 장점 덕분이다. 여기에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팀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도 쌓았다.
삼성은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육선엽을 지명했다. 당시 삼성은 육선엽을 "가장 잠재력이 큰 선수"라고 평가했다.
대형 투수가 될 재목의 프로 데뷔전 순간이 왔다. 하지만 육선엽의 얼굴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7회말 마운드에 오른 육선엽은 몸을 풀 때부터 평소보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삼성 팬들은 온라인 상에서 "긴장한 표정이 귀엽다", "긴장 풀고 힘내라"는 등의 실시간 반응을 보였다.
육선엽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할까. 육선엽은 2일 "저는 크게 긴장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누가 봐도 긴장한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숨 가쁘게 쉰 건 더 컨트롤할 수 있게 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육선엽. 삼성 라이온즈 제공긴장 탓일까. 제구가 안정적이진 못했다. 선두 타자 강승호를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낸 이후 2볼넷 1안타를 내주며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다행히도 후속 타자 정수빈에게 유격수 병살타를 끌어내 이닝을 마무리했다. 육선엽은 1이닝 동안 5타자를 상대하며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임무를 다했다.
그러나 만족하지 않았다. 육선엽은 "첫 타자 아웃을 잡은 후 더 세게 던져보려는 욕심이 생겼다"며 "욕심이 과해서 제구도 안 되고, 밸런스가 망가졌다"고 돌이켰다. 이어 "운이 좋았다. 제 실력으로 잡은 게 아니다. 유격수 (이)재현이 형이 잘 도와줘서 그렇게 됐다"며 "다음에는 스스로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이날 경기 양상을 보면 출전 가능성은 그리 크진 않았다. 급하게 마운드에 오른 감도 있었다. 경기 중반까지 삼성은 두산과 백중세의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 타선이 6회와 7회에 총 8점을 뽑아냈고, 점수 차에 여유가 생기며 박진만 감독은 육선엽에게 기회를 줬다.
실제로 박 감독은 "타이밍상 임창민이 나올 순서였다"면서도 "7회에 이성규의 홈런이 나와 점수 차가 생겼기 때문에 육선엽에게 기회가 갔다"고 설명했다. 육선엽도 "갑작스럽게 나간 부분이 있었다"며 "앞으론 몸을 더 미리 풀어놔야 할 것 같다"고 되새겼다.
데뷔전을 치른 이후 다른 팀 신인 동기들에게도 연락이 왔다고 했다. 친구들 역시 긴장한 육선엽을 놀렸다. 육선엽은 "(황)준서, (조)동욱이, (김)윤하에게 연락이 왔다"며 "특히 준서가 '입술이 왜 그렇게까지 파랗냐?'고 놀렸다"고 전했다.
선배들과 친구들의 농담에 육선엽은 "진짜 빨리 다음 등판이 왔으면 좋겠다. 꼭 만회하겠다"고 웃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등판 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도 강조했다.
인터뷰하는 육선엽. 이우섭 기자
농담이 섞인 조언이라도 육선엽은 이를 모두 새겨들었다. 육선엽은 "이호성 선배가 '두 번째 등판 때는 나아진다'고 했다. 먼저 데뷔한 다른 구단 친구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며 "그땐 떨지 않고 던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끝으로 육선엽은 "제일 중요한 건 신인답게, 패기 있게 던지는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긴장하지 않고 제 볼을 잘 던진다면 알아서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빨리 다음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다"고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