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외국계 펀드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절차(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중재 판정에서 우리 정부가 두 번째 패소했다.
다만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중재 판정에서는 청구액의 약 7%만 인용된 반면,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탈과의 분쟁에서는 약 16%로 더 높은 비율이 인용돼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전날 "우리 정부가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 한화 약 438억원(환율 달러당 1,368.5원 기준)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합병과정에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에 대한 개입이 한미 FTA 협정상 '최소기준대우 의무'를 위반해 메이슨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관련 손해를 일으켰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배상액은 지난해 6월 나온 엘리엇 사건보다 총액은 적지만, 애초 청구한 금액의 인용비율은 훨씬 높은 것이다.
엘리엇은 최소 7억7천만 달러(약 8600억원)의 피해를 주장했지만, 이 중 '7%'가량인 약 690억원을 인정받은 바 있다. 메이슨은 약 2억 달러(약 2737억원)를 청구해 '약 16%'를 인정받았다.
인용비율의 차이는 엘리엇의 경우 합병 당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보상을 받은 부분이 일부 존재해서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의 이익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법정 사항에 대해 주주가 자기 소유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해달라고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메이슨은 합병 발표 뒤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대상이 되지 않았다.
아울러 중재판정부는 손해액 산정에 있어서는 '삼성물산 주식의 실제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메이슨 측은 '합병이 부결됐더라면 실현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물산 주식의 잠재적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한편 중재판정부는 인용된 청구금액 외에도 지연이자(2015년 7월 17일부터 5% 상당)와 함께, 메이슨 측 법률비용 전액 1031만8961달러(약 141억원) 및 중재비용 일부 63만 유로(약 9억원)도 우리 정부가 부담하라고 결정했다.
앞서 엘리엇과 메이슨은 2015년 5월 주식교환 방식으로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손해를 봤고, 이 합병은 청와대와 복지부 관계자 등이 개입해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며 2018년 ISDS 중재신청을 냈다.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은 삼성 이재용 당시 부회장 등이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승마지원 등 뇌물공여로 이끌어낸 것이란 의혹이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자,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엘리엇 사건 중재 판정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에 나온 메이슨 사건 판정도 3개월 내 취소 소송을 낼 수 있으며, 관할지는 싱가포르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리로펌 및 전문가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전날 판정에 대해 "정부는 불복절차에 최선을 다하고, 해외 헤지펀드들에 물어줘야 할 국민 혈세에 대해 삼성물산과 이재용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