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한 뒤, 구급차로 호송된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지난 2월 18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38일간) 119 구급대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616건으로, 집단행동이 있기 전인 지난 1월 1일에서 2월 17일 사이(47일간)보다 약 2.5배나 늘었다.
이중 '병상 부족'을 이유로 재이송한 건수는 해당 기간 동안 32건에서 71건으로 2.2배 증가했다. 소방청이 밝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응급실 부족'이 25건에서 49건으로, '중환자실 부족'이 6건에서 8건으로, '입원실 부족'이 1건에서 14건으로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의료 현장에 남은 전문의들이 떠난 전공의들을 대신했지만,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된 건수도 105건에서 253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앞서 지난 2월 18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다음 날(19일)까지 근무하는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까지 전국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92.7%인 1만 1935명이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하던 병원을 이탈했다.
이처럼 '응급실 뺑뺑이'가 급증하면서 환자들이 내원할 응급실이 마땅치 않아 구급대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일평균 이송병원 선정 건수는 지난 2월 18일부터 3월 27일까지 162건이었다.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7일 사이 일평균 건수인 99건보다 약 61% 증가한 것이다.
구급상황관리센터는 구급대의 요청을 받으면 환자의 중증도를 판단해 중증·응급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나 대형병원으로, 경증·비응급환자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이나 인근 병·의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병원을 선정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119구급대원 대다수는 구급상황관리센터에 요청하기 전에 직접 병원에 연락해 응급실의 빈자리를 확인하는데, 적당한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상황관리센터 도움을 받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구급대원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후, 과거 코로나19 때만큼이나 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걱정하고 있다.
전남권에서 일하는 한 119구급대원은 "(응급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정할 때) 확실히 파업 여파가 있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갈수록 파업 여파가 더욱 클 것"이라며 "대부분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할 때, (구급상황관리센터보다) 병원에 먼저 물어보기 때문에 실제 이송병원 선정 건수는 (소방청 통계)보다 10배, 50배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의료대란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병원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관계자는 "(응급실에) 전공의 파업의 여파가 당연히 있다"며 "전공의들의 비중이 컸던 수련병원 응급실의 경우, 119 이송 건수나 재이송 건수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차 병원에서 상태가 안 좋거나 중증인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한다"며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들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한 달째 전원 자체가 막혀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의료대란의 최대 피해자인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정부와 의료계 모두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대표는 "1분 1초가 급한 환자들에게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되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라며 "의료계, 특히 전공의들은 하루빨리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을 살피는 노력을 당장 해야 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