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성 사역자의 지위와 역할 문제를 놓고 치열한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초기 한국교회 여성의 역할을 살펴보는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예장합동총회 소속 목회자들의 모임인 교회갱신협의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선 초기 한국교회 여성 사역자의 목회 활동에 제한이 없었다는 점이 강조됐습니다.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오늘의 합동총회 입장과는 상반된 내용이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총신대신대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양현표 교수는 한국교회 초기 여성의 복음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교회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만큼 여성의 역할이 컸다는 겁니다.
자신의 이름조차 없었던 여성들이 기독교를 통해 한글을 깨우치고 교육을 받으면서, '신여성'으로 깨어난 기독 여성들.
대표적인 신여성인 전도부인은 여성들을 문맹에서 깨우는 한글 교사이면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성경교사였고, 성경과 기독교문헌을 판매하는 매서인이자, 문화매개자, 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하는 독립운동가까지, 복음전파와 사회개혁, 독립운동에 적극 나섰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전도부인의 역할에는 거의 제한이 없었습니다.
[양현표 교수 / 총신대 신대원 ]
"초기에는 선교사들의 도우미 역할이었지만 곧바로 교회생활 전반에 걸쳐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순회전도자. 사경회 인도, 순회 주일설교, 주일학교, 기도모임, 교회개척, 교회자치회 인도, 선교사…"
특히 1900년대 대부흥운동은 남녀가 구별됐던 당시 조선 사회에서 하나님 앞에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평등의 원리를 깨닫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양현표 교수 / 총신대 총신대]
"회개가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있고 대부흥운동에서. 근데 여자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게. 여기서 '아 하나님 앞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라는 일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가 당시 조선사회에서 여성인권 향상의 촉매제이자 기폭제였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부인의 역할이 커지면서 1930년대에는 전도부인 양성 자격제도가 도입되고 여전도사로 발전하며 노회가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제도화되고, 남성들이 점차 교회를 주도하면서, 교회 안에서 제한이 없었던 여성들의 역할과 활동은 축소되기 시작했다고 양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양현표 교수 / 총신대 신대원]
"교회가 남성위주로 회귀되면서, 남성들이 교회로 들어오면서, 교회 주도권을 남성이 잡고 조선시대의 문화에 의해서 자꾸 여성들은 허드렛일로 치우치게 되고. 그게 신학적 이슈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판단이 들어요."
양현표 교수는 한국교회가 다시 여성의 사역과 활동을 제한하지 말고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현재 예장합동총회의 현안인 여성 목사안수와 관련해서도 축도와 세례 등 예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여성들도 다 시행하고 있다면서, 여성의 사역에 제한을 두지 말고 다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최내호 편집 김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