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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여야 모두 약속한 '몰카 근절'…"더 많이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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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공약(公約)은 어느새 공약(空約)으로 사라진다. 잊혀진 공약 위에 정당은 다시 공약(公約)을 덧씌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효능감을 떨어뜨리는 공약의 악순환. 22대 총선을 앞둔 지금, CBS노컷뉴스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직접 제출한 10대 공약을 전수조사했다. 지난 공약의 현주소를 살피며 새로운 공약의 앞날을 내다본다.

[21대 총선 10대 공약, 얼마나 지켰나②]
'n번방 사건'에 여야 모두 "몰카 근절" 외치더니…도처에 널린, 더 발전한 변형카메라
청년 디딤돌 전세금 이자금리 인하한다더니 오히려 올라…청년들 부담 ↑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화도 전면 시행은 NO…진료비 폭탄에 허리 휘는 보호자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 한 매장에 '몰래카메라'를 취급한다는 간판이 크게 걸려있다. 나채영 수습기자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 한 매장에 '몰래카메라'를 취급한다는 간판이 크게 걸려있다. 나채영 수습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너도나도 '저출산' 대책 발표…4년 전 약속은 지켰나
②'n번방 사건' 여야 모두 약속한 '몰카 근절'…"더 많이 팔려"
(계속)

"n번방 사건은 성착취, 인권유린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이 독버섯처럼 퍼져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2020.02.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은 위 참여자들이 이 전대미문의 성착취 영상 배포 사건에 가담한 일을 좌시하지 않겠습니다"(2020.03. 미래통합당)

 
지난 21대 총선 직전인 2019년 수면 위로 드러난 'n번방 사건'. 범죄 집단은 텔레그램으로 유인한 피해자들을 협박해 '노예'처럼 부리며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착취물은 널리 유포되고 거래됐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이 사상 초유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는 너무도 많았다.
 
전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여야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그 중 하나가 '변형카메라(몰카)' 근절 공약이었다. 양당 모두 이구동성으로 발표한 공약이었다. 별다른 이견이나 쟁점도 없었다. 그러나 이행되지 않았다.
 

근절되기는커녕…더욱 교묘하게 발전한 '변형카메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서울 용산전자상가와 세운상가를 직접 찾았다. 여야의 공약이 무색하게, '초소형 카메라, 비밀녹음기 전문', '몰래카메라'라는 간판이 내걸린 가게들이 버젓이 운영 중이었다.
 
"남자친구가 바람난 것 같아요" 증거를 잡기 좋은 상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펜, 보조배터리, 자동차 열쇠, 스마트워치… 설명해주지 않으면 '몰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제품들이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몰카' 업계에서 관건은 녹화 시간이다. 몰래 숨겨두고 녹화하는 특성 탓에 녹화 가능 시간이 길수록 가격이 올라갔다. 가게 주인은 '예전에는 10시간 정도 밖에 녹화가 안 됐는데 이제는 20시간도 가능하다'며 신종 변형카메라를 보여줬다. 몰래 촬영하는 영상을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변형카메라도 꺼내왔다. 고작 10만~30만 원만 내면 변형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한 상점 주인은 변형카메라의 렌즈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촬영이 가능하다"며 "어디로 넣어놓고 구멍만 뚫어 놓거나, 테이블 밑에 밀어 넣으면 안 보이니까 괜찮다"고 '들키진 않을지' 걱정하는 취재진에게 '몰카 수법'까지 친절히 안내했다.
 
또 다른 상점 주인도 "변형카메라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 않는 이상은 (변형카메라로 촬영해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녹음기처럼 생긴 변형카메라가 지금 제일 많이 나간다"고 안심시켰다.
 

쟁점도, 이견도 없는데…여야 무관심 속 방치

22대 총선을 앞두고 CBS노컷뉴스는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여성·청년·노인·장애인·아동청소년 등 이른바 '소수자 관련 공약'(이하 소수자공약)을 살펴봤다.
 
'변형카메라 관리'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공약' 중 하나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모두 강조했던 공약이었다. 민주당은 변형카메라 수입, 판매 및 소지 등록제를 도입하고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고, 미래통합당은 변형카메라 관리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범죄를 근절해 '여성 안전'을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취지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변형카메라는 온·오프라인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2건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 사이 변형카메라 수입 규모는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에는 242만 2000달러 (7465kg), 지난 2023년에는 299만 달러(1만 2818kg) 가량의 초소형 카메라가 수입됐다.
 
불법촬영 범죄도 판을 치고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촬영(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 건수는 △2019년 5762건 △2020년 5032건 △2021년 6212건 △2022년 6865건 △2023년 6654건에 달했다.
 
    국회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불법촬영 범죄가 한국 사회에서 사그라지기보다는 장치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진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연히 국가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대학교 송다영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최근에는 클릭만으로 모두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라 변형카메라를 소지하기가 더 쉬워졌다"며 "(몰카 피해로부터) 더 나은 법률적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의 경우, 21대 총선에서 여성 공약으로 '여성 1인 가구 범죄 예방을 위해 디지털비디오창, 문열림 센서, 휴대용 비상벨 등의 스마트 안심세트 지원'을 내걸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지자체마다 예산도, 지원 대상도 중구난방이라 온전히 공약이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은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1인 가구 등을 위한 안전한 거주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한 안심 물품 세트 지원', '주거침입 동작 감지 센서 설치 지원' 등을 다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4년간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탓에, 또 비슷한 공약이 재탕된 셈이다.

민주당, '소수자' 공약 개수도 적은데…그마저도?

소수자 관련 공약의 경우 민주당이 통합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도 일부 공약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미이행된 대표적인 공약이 '청년 디딤돌 전세금 이자금리 인하'다. 청년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청년 디딤돌 전세금 이자금리는 오히려 지난해 0.3%p 인상됐다.
 
청년들은 오히려 부담이 가중됐다고 볼멘소리를 털어놨다. 청년 대출을 받은 30대 하모씨는 "작년에 이자가 올라서 달마다 내는 돈이 달라졌다"며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하씨는 "금리 인상에 누군가는 '그냥 몇 만원, 밥 한번, 물건 하나 안 사면 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단순히 돈 한번 쓰고 안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매달 갚아야 할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에서 가장 체감이 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2대 총선에서는 청년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우선순위에 두는 쪽에 투표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백승훈 청년지갑트레이닝 센터장은 "청년 디딤돌이나 버팀목 대출 같은 정부 상품의 경우 청년들이 믿고 이용하지 않느냐"며 "시중 금리를 따라가려 출시한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라면 정부나 시중은행이 잘 협의해 청년들의 실제 부담을 덜어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또 전세금이 오르는 상황 속에 청년들이 그 대출을 이용한 것"이라며 "금리 인상을 떠나 청년들의 생활 안정, 주거 안정에도 영향을 주는 부분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 공약도 있었지만 이행은?

한편, 몇년 사이 관심이 높아진 반려동물을 두고서는 통합당이 관련 공약을 7개나 발표했지만, 정작 절반도 이행하지 못했다. 특히 '애완동물 진료비 표준화(표준수가제)' 공약을 내놓았지만, 병원마다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게 값인 진료비에 반료동물 보호자들은 여전히 마음 놓고 동물병원에 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진료 항목마다 적정 진료 비용의 상한과 하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데다 병원이 진료기록부를 보호자들에게 공개할 의무도 없어서 '반려동물 진료에 얼마를 내는 게 합리적인지' 보호자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화랑대역 인근 한 동물병원 정문 앞에 '오늘은 진료 접수가 마감되어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공지글이 붙여져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서울 노원구 화랑대역 인근 한 동물병원 정문 앞에 '오늘은 진료 접수가 마감되어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공지글이 붙여져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동물병원은 이른 오전부터 1,000만 반려인 시대답게 붐볐다. 서울 화랑대역의 한 동물병원에는 '오늘은 진료접수가 마감돼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먹골역의 한 동물병원도 오전부터 대기자가 병원을 가득 채웠다.
 
이 동물병원에서 만난 반려묘 보호자 40대 김모씨도 "부르는 게 값"이라면서 "두 마리 종합검진 비용으로 80만 원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화랑대역의 한 동물병원에서 만난 반려견 보호자 추철환(54)씨는 "병이나 아파서 병원 갈 때마다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며 "간단한 진료인데도 한 번에 80만 원이 든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최희정씨는 "강아지가 (숨지기 전) 갑자기 아파서 바로 입원시키고 수술했는데 입원 비용만 하루에 40만 원, 수혈비용은 90만 원이었다"고 말하고, "강아지가 죽는다고 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최씨는 "진료기록부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항목에 맞춰 진료비도 어느 정도는 정해져야 한다"며 표준수가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반려동물진흥원 조경 교육센터장은 "양육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의료비"라며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는 병원의 수가를 통상적 수가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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