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순직한 故 김수광 소방장, 박수훈 소방교에게 분향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지난 1월 31일,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가 경북 문경시 육가공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 구조작업 도중 고립돼 순직했다.
애도기간 동안 화재현장과 빈소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여당은 소방공무원 수당 현실화와 같은 소방관 처우 개선 공약을 내놓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한 달이 지났다.
소방관들이 직면하는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도 소방관들은 마음 한 켠에는 사명감을, 또 한 켠에는 짙은 '두려움'을 품은 채 현장으로 향한다.
일선 소방관들 "내 일이 될 수도 있어 두려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소속 소방관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소방 인력 증원과 소방 조직 국가직화 등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문경 소방관 순직 이후 소방관 A씨는 "(동료들을 보면) 당장 출동을 나가면 내가 (순직)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소방관 B씨도 "순직 사고가 날 때마다 부모님한테 연락이 온다"며 "항상 현장 갈 때 '좀 더 안전에 유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생각이 많아진다"고 전했다.
16년차 김길중 소방장은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주도에서도 순직 사건이 있었고, 너무 자주 일어나니까 우리 소방관들도 참 안타깝고 제도가 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11년차 김수룡 소방장 또한 "이 슬픔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며 "다른 동료 직원들이 너무 위축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이 있다. 계속 고참들이랑 선배들이 다독여주면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생명줄인 '라이트라인'조차 안전 담보 어려워…인력·수당 문제도 여전
뜨거운 화염에도, 거센 물살에도 인명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소방관들조차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
위급한 상황에 놓인 소방관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길을 밝히는 장비인 '라이트라인'부터 부실하기 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라이트라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방청이 보유한 라이트라인은 총 2386개다.
소방청 '라이트라인 실태조사 보고서' 발췌.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 제공이 라이트라인들이 견딜 수 있는 내열성 한계는 70~125℃에 불과하다. 연기를 뚫고 길을 찾을 때 써야 하는 장비인데, 정작 화염이 치솟는 화재현장에서는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미국 소방관은 일반적으로 500~700℃까지 견딜 수 있는 라이트라인을 사용하고 있다"며 "방화복만 해도 500℃는 견디도록 해주는데, (내열성이) 그 정도는 되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인력 부족'은 하루 이틀 거론된 문제가 아니다. '2023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1명이 책임져야 하는 인구 수는 무려 780명에 달한다. 최근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경찰도 2022년 경찰공무원 1인당 시민 398명을 담당하는 것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 많은 인원을 맡고 있다.
심지어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소방공무원 신규 채용 규모까지 감소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신규 채용 인원은 △2021년 4461명 △2022년 3814명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이후 배정된 채용 인원은 △2023년 1560년 △2024년 1683명으로 급감했다.
인력 부족은 곧 소방관들의 희생으로 직결된다. 동료 소방관을 구하는 '신속동료구출팀(RIT) 제도'는 인력이 부족한 탓에 이번 문경 화재 현장에서 운영되지 못했다. '신속동료구출팀'은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매몰되거나 고립될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투입되는 팀으로 지난해 2월 도입됐지만, 한정된 인원으로는 한계가 있어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 교수는 "RIT 제도가 도입은 됐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RIT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도, 보상은 열악하다. 화재진화 작업 등을 직접 수행하는 소방공무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인 '화재진화수당'은 고작 월 8만 원이다. 1990년 월 4만 원으로 출발해 2001년 월 8만 원으로 인상된 후 23년 간 동결됐다.
지방비 비중 압도적인 소방특별회계…'무늬만 국가직' 탈피해야
열악한 소방관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소방특별회계 총액은 국비(소방안전교부세 등)와 지방비로 구성되는데, 문제는 지방비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소방청 '2023년도 소방특별회계 총액'.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 제공
지난해 소방특별회계 총액에서 국비는 12.4%(9621억 원), 지방비는 87.6%(6조 7681억 원)를 차지했다. 지방비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보니, 특히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지자체는 인력을 충원하거나 소방장비를 구매할 돈이 없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소방본부 김동욱 대변인은 "보통 장비를 살 때 국비 50%, 지방비 50% 비율로 사는 경우가 많다"며 "국비가 적을수록 장비를 사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 또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장비를 사기 어려운 것"이라며 "최소한 3분의 1 이상은 국비로 충당해야 하지 않나, 그게 적정 수준이지 않나 판단이 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결국 '무늬만 국가직'이라는 비판을 받는 소방공무원을 온전한 국가직으로 만들어, 국가가 소방관들의 처우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록 지난 2020년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지자체에서 예산권 및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 지자체의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정부가 외면하지 말라는 얘기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화 된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 더 많은 제도나 정책이 가다듬어져야 하고 추진이 되어야 한다"며 "정치권 등에서 그러한 노력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공노 김주형 소방본부장도 "소방관의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달라"며 "정부와 국회는 법령 개정과 예산 확보를 통해 온전한 국가직을, 온전한 국가직 전환을 책임지고 해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