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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3시간 기다려도 의사 얼굴 못 봐" 강원권 대학병원 '의료공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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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강원대병원,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의료 공백 초읽기
환자들 "3시간 동안 이름조차 안불려" 하소연
강원대 어린이병원 전문의도 다음달 줄사직..파장 확산 우려
상급병원들 "전문의 투입 총력 대응" 진화 총력
전공의 이탈 가속화에 강원도, 비상진료대책 수립

21일 오전 강원도내 유일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구본호 기자21일 오전 강원도내 유일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구본호 기자
"3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의사 얼굴도 못 봤어. 늙은 게 죄지."

정부의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에 반대한 전공의들 대다수가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강원도내 대학병원들도 혼란에 빠졌다.

필수 응급 의료 분야와 응급실의 경우 의료진을 추가 배치하고 교수 등 전문의들이 투입돼 현장을 수습하고 있지만 이번 집단행동이 장기화할 경우 의료 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현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1일 오전 강원도내 유일한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 접수 및 수납 부스는 이른 시간부터 환자들로 붐볐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된 심장내과 진료실 앞은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소에도 대기 인원이 많은 진료과목이다 보니 대기 시간이 길지만 병원 내 전공의의 63.3%가 전날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로 인한 공백이 환자들의 진료 불편으로 이어지면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외과의 경우 레지던트 4년 차를 제외한 대다수가 사직서를 낸 상태다.

내과의 경우 전공의 사직서 제출 비율이 절반으로 전체 비중보다는 적지만 환자 수가 많아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7시에 홍천에서 출발해 진료를 받으러 온 최모(66)씨는 "일찍 와서 기다려야 하니까 미리 와서 채혈하고 준비했는데 계속 시간이 밀렸다.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혈액종양내과를 찾은 한 환자는 "8시 50분부터 병원에 왔는데 이름조차 불리지 않았다. 늙은 게 죄인지"라며 호소했다. 병원 구석에 앉은 환자 뒤편에 위치한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켰다.

21일 오전 강원도내 유일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 응급실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구본호 기자21일 오전 강원도내 유일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 응급실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구본호 기자
응급실 앞은 환자를 이송해 온 119구급차량들과 사설 앰뷸런스들까지 몰리면서 혼잡한 모습을 보였다. 응급실을 찾은 갓난 아이를 안은 부모부터 고령의 노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리며 힘든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도내 유일한 강원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이날 산부인과, 소아과 등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없었으나 의료진 공백으로 인한 피해 우려가 가장 큰 상태다.

어린이병원의 경우 지난달 소아청소년과 교수 11명 중 4명이 사직 의사를 밝힌 가운데 다음 달 계약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내분비와 신장 등 채용이 쉽지 않은 분야를 맡은 의료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강원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진료나 수술에 큰 변동 사항이 있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에 대비해 (수술)스케줄을 조정하고 환자들에게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은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추가 투입했고 필수 의료 진료와 중환자실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1일 오전 강원 춘천에 위치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2층 수납 부스 앞으로 환자들이 몰려있다. 구본호 기자21일 오전 강원 춘천에 위치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2층 수납 부스 앞으로 환자들이 몰려있다. 구본호 기자
한림대 춘천성심병원도 오전부터 많은 환자들이 몰리면서 최소 1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하는 진료 과목들이 수두룩했다. 병원을 찾은 한 환자는 "접수를 받아줘야 진료라도 볼 텐데 도대체 언제쯤 접수가 되는 것이냐"라며 병원 직원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 50명 중 인턴 11명, 전공의 38명 등 총 49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전공의 4명만 업무에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레지던트와 인턴 등 전체 전공의(152명) 중 63.8%(97명)가 사직서를 내면서 전문의들이 휴가를 다 반납하고 진료와 수술 현장에 투입됐다. 중증 응급환자들의 경우 현행 방침대로 운영하고 있으나 경미한 환자들의 경우 진료 일정을 연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현장 대응하고 있다.

평소 전공의들이 맡았던 분야를 펠로우(전임의)와 교수들이 도맡게 되면서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의료 대란은 시간문제라는 지적들이 현장 의료진들로부터 나온다.

도내 한 대학병원 의료진은 "보통 전공의 2~3명이 환자 60명을 나눠서 맡는데 지금은 펠로우 1명에 교수가 맡아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간단한 수술들을 병원에서 하지 못하니까 일반 개인 병원이나 중간급 규모 병원들로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로 처방을 낼 의사가 없어 평소보다 한적해진 아이러니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영동권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인 강릉아산병원은 전공의 33명 중 23명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도내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매번 상경해야 했던 환자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일명 '빅5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대거 이탈로 수술과 진료 예약을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 수술로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의 진료를 위해 원주와 서울대병원을 오가고 있는 장모(34)씨는 "몇 달간은 예약이 바로 됐었는데 이번에는 2~3개월 있다 오라고 하더니 이번엔 의사 집단 사직 때문에 예약을 잡아줄 수 없다고 해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1일 오전 강원 춘천에 위치한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의 한 진료실 앞으로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구본호 기자21일 오전 강원 춘천에 위치한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의 한 진료실 앞으로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구본호 기자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강원도와 지자체들도 비상 대응에 나섰다. 강원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도내 수련병원 9곳 전체 전공의는 385명으로 이 중 81.3%(313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도는 지난 8일부터 비상 대책상황실을 운영하며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 14개소와 시·군 보건소 및 지소에서 비상진료대책을 수립하고 개원의 집단 휴진에 대비해 평일 연장 진료 및 휴일 진료 체계를 구축했다.

26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이 24시간 운영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도내 3개 국군병원(강릉, 춘천, 홍천)에서도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해 운영 중이다.

이경희 도 복지보건국장은 "응급진료가 필요한 도민들이 소방 119구급대의 이송 안내에 따라주시고 대형병원의 중증응급환자 우선 치료를 위해 환자의 중증도에 따른 기타 의료기관으로의 전원 안내에 적극적으로 따라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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