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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넷플릭스, 1.5배속으로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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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대비 성능 비율, '시성비' 중요해져
성인 10명 중 7명은 '빨리 감기' 시청 경험
콘텐츠 범람 시대, "결론 빨리 알고 싶다"
수동적 콘텐츠 소비, 문해력 저하에 영향?
정보 과부하 걸린 뇌, 문제해결능력 떨어져
빨리 감기 중독, 극단적 콘텐츠 선호 불러
'최고의 선택'보단 '적당한 만족' 추구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조석영 PD, 신혜림 PD
 
◇ 채선아> 좀 더 밀도 있게 알아볼 이슈 짚어보는 뉴스 탐구생활 시간입니다. 조석영 PD가 준비했어요. 
 
◆ 조석영> '시성비 시대와 빨리 감기 중독의 나비 효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가성비'라는 말은 익숙하시죠? 가격 대비 성능 비율, 그런데 이제 가성비가 아닌 '시성비'의 시대가 됐다, 시간 대비 성능 비율의 시대가 됐다는 게 올해 트렌드로 많이 꼽혔어요.
 
TV를 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다거나, 16부작 드라마를 정주행하지 않고 유튜브에 요약 영상을 찾아본다거나, 지하철을 탈 때 환승 통로나 출구와 가까운 차량 위치에 미리 가있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을 아끼는 거죠.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분초사회'라는 주제로 분석한 트렌드인데요. 시간 소비와 계획 단위가 분초로 나눠진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이 책에선 "이제 시간 지상주의를 떠받드는 시대가 왔다"라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 신혜림> 원래 '시간은 금이다'라고 하잖아요. 최근 들어 이런 트렌드가 더 강해진 거죠?

◆ 조석영> 저희가 최저임금도 시간급으로 계산을 하잖아요. 시간이 곧 돈이 되는 건데, 이 외에도 주문하고 기다리는 거 싫어서 미리 앱으로 주문하고 픽업만 해 가는 트렌드가 생기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 중고 상품뿐만 아니라 시간을 쓰는 알바 자리가 올라오는 것도 자연스러워진 거죠. 동네 맛집 줄 서주기, 강아지 산책시켜주기, 이런 게 올라온다는 겁니다. 또 젊은 세대 같은 경우에는 연봉이 높은 것보다 출퇴근 시간이 짧은 직장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케이팝 히트곡들을 비롯해서 노래가 점점 짧아지는 경향도 있어요.
 
◇ 채선아> 라디오 방송할 때 노래 틀어야 되는 시간이 6분 정도 남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노래는 너무 짧다보니 6분짜리 노래를 찾아서 헤매게 되는 거죠.

◆ 조석영> 작년에 차트를 휩쓸었던 뉴진스의 ETA, 2분 31초예요. 심지어 이 노래 가사 첫 줄이 "낭비하지 마. 네 시간은 은행"이에요. 정말 길이부터 가사까지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노래였던 거죠.


◇ 채선아> 숏폼 콘텐츠 유행도 그렇고, 점점 짧은 자극을 추구한다는 건데, 이런 현상에서 여러 갈래의 분석이 나오는 것 같아요.

◆ 조석영> 시성비라는 키워드로 짚어낼 수 있는 사회 현상이 되게 많습니다. 오늘 좀 더 주목하고 싶은 건 콘텐츠 소비에서의 '빨리 감기'인데요. 저희 방송도 지금 1.25배속이나 1.5배속으로 보신다는 분들이 많은데요. 유튜브에는 이 배속 기능이 꽤 오래 전에 도입됐는데, 넷플릭스에서 이 기능을 도입하면서 크게 한번 논란이 됐습니다. 넷플릭스가 이 배속 시청 기능을 2019년에 시범 도입하고, 2020년에 정식 도입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미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스트리밍 되는 OTT잖아요. 이런 작품들은 장면의 디테일 하나하나, 호흡의 길이까지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가있는데 이걸 후루룩 넘겨버린다는 이유로 당시 영화계에서 큰 반발이 나왔죠. 하지만 그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기능이 도입됐고, 지금 디즈니 플러스를 제외한 다른 OTT에도 이런 배속시청 기능이 있습니다.
 
◇ 채선아> 디즈니 플러스는 여전히 빨리 감기가 안됩니다.

◆ 조석영> 고집이 있죠. 이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가 있어요.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에서 2023년 7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전국 성인 1천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인데, 응답자의 69.9%가 영상을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 채선아> 그럼 10명 중에 7명꼴로 빨리 감기를 한다는 건데, 안 하는 사람들의 2배가 넘네요. 사실 저도 TV 볼 때는 빨리 감기가 안 되니까 딴 짓을 엄청 많이 하거든요.

◆ 조석영> 왜 빨리 감기를 하느냐, 빨리 결론을 알고 싶어서 41%, 시간은 없는데 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36.5%, 일이 많은데 보아야 할 것도 많으니까 32%입니다.

◆ 신혜림> 볼 게 넘쳐나는데 시간은 또 없고, 결론은 또 빨리 알고 싶은 거죠.


◆ 조석영> 어떤 장르의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느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어요. 30% 정도, 드라마 35%, 빨리 감기로 제일 많이 보는 건 정보 제공 영상입니다(53%). 그런데 옆 나라 일본에서는 3년 전 조금 비슷한 조사에서 드라마가 1위로 나왔습니다.

◇ 채선아> 같은 조사를 한 걸 보니까 일본도 우리랑 트렌드가 비슷한가 봐요?

◆ 조석영> 사회 현상으로서 빨리 감기나 시성비에 주목하는 거는 일본이 앞섰죠. 언론인 출신 작가인 이나다 도요시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여러 가지 분석을 했는데요. 빨리 감기를 하는 이유는 비슷해요.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다는 건데, 일본에서는 특히 대화에 끼기 위해서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 채선아> 인기가 많은 드라마가 방영 중이라 사방에서 그 얘길 하는데 나는 안 봤다고 하면 대화에 낄 수가 없죠.
 
◆ 조석영> 그걸 도저히 열 시간 넘게 볼 수가 없다면, 요약 영상을 보거나 빨리 감기로 넘겨가면서 본다는 겁니다. 2시간짜리 영화 한 편 볼 시간에 2배속으로 돌리면 영화 두 편 볼 수 있죠. 10분짜리 요약본을 보면 12편을 볼 수 있는 거예요. 같은 2시간 동안 나는 몇 개를 보느냐, 이 시성비를 높여주는 게 빨리 감기나 요약본이라는 거죠.

◆ 신혜림> 제가 영상을 만드는 PD잖아요. 이렇게 콘텐츠 소비 행태가 바뀌게 되면 사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많이 달라지긴 하거든요. 유튜브로 드라마 요약본을 만든다고 하면 주된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거 말고는 다 제거를 해버린다든가, 아니면 아예 예능 식으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서 연출해버려요. 그러면 원본과는 완전히 다른 영상이 되는 거죠.

◆ 조석영> 사실상 새로운 장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일본에서 이렇게 콘텐츠 제작 문법이 달라지는 사례를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요. 영상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방식의 연출이 아니라 '설명하는' 방식의 연출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가상의 예를 하나 들면 <귀멸의 칼날>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만화이자 지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이 있어요. 주인공이 발이 미끄러져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데 눈 위에 떨어져서 살거든요. 이걸 영상문법으로 보여준다면, 주인공이 딱 미끄러질 때 '나 이제 끝났나?'하는 느낌의 표정을 보여주고, 다 떨어진 다음에는 '살았잖아 왜지?'라고 생각한 시점에 옆에 있는 눈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보는 사람들은 '눈 때문에 살았구나'를 주인공과 같은 타이밍에 알게 되겠죠.


◇ 채선아> 대사를 굳이 안 해도 알 수 있는 거죠.

◆ 조석영> 그런데 이제는 대사로 그걸 다 설명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나 미끄러졌다, 끝인가? 눈 덕분에 살았군' 이걸 전부 대사로 처리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 채선아> 빨리 감기를 하면 자막을 열심히 보거든요. 이렇게 대사 처리를 해주면 자막에도 나오니까, 자막 보면서 또 10초 넘기기 하고 빨리 감기로 계속 볼 수 있거든요.

◆ 조석영> 요즘 콘텐츠에 계속 설명이 많아지는 게 이 빨리 감기 시청 습관이랑도 맞닿아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더 적극적으로 작품에 몰입하거나 해석할 필요 없이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채선아> 떠먹여 주니까요.


◆ 조석영> 원래 모든 게 상징이고 해석해야 되고, 이런 난해한 작품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긴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난해함의 수준이 점점 내려간다는 겁니다. 그 외에도 요즘엔 시청자들이 주인공이 겪는 시련이나 불쾌함의 순간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져서 평범한 주인공이 아니라 엄청나게 센 사람을 등장시킨다든지, 불쾌하거나 지루한 장면은 확 줄이거나 넘겨버린다든지, 이런 변화들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 채선아> 최근에 한겨레에서 이런 보도를 했어요.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획 기사였는데요. 아무리 모르는 단어라도 우리가 앞뒤 맥락을 보면 단어 뜻을 유추할 수가 있잖아요. 요즘에는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낯선 것을 스스로 해석하는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었거든요.

◆ 신혜림> 뇌를 겉만 쓰는 느낌이에요.

◆ 조석영> 여기에 역설적인 문제가 있어요. 빨리 감기를 통해서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면 뇌를 덜 쓰게 되는 게 아니냐 싶은데, 오히려 빨리 감기 시청의 부작용은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2배속으로 보면 같은 시간에 정보량이 2배가 되잖아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과 <2024 트렌드 모니터>에 나오는 분석인데요.


◆ 조석영>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기억 과정은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으로 나뉘는데 단기 기억 단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몰리면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 단기 기억은 작업 기억이라고 해서, 일종의 메모지 같은 거예요. 그래서 금방 날아갈 수 있는데 이걸 계속 숙고하는 과정을 거치면 장기 기억에 저장이 되어서 마치 책장처럼, 언제든 내가 꺼내볼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단기 기억에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는 밀려들고, 그걸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앞에 들어온 정보들은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신혜림>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뇌를 혹사시키고 있다는 거네요.
 
◆ 조석영>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새로운 걸 받아들일 여유는 없으니까 또 같은 맛, 비슷한 콘텐츠를 찾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2024 트렌드 모니터>에서는 이 현상을 '빨리 감기 중독'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점점 같은 것만 찾게 되는 방식으로 중독이 되고, 심지어 점점 자극이 강한, 일명 '매운맛' 콘텐츠를 선호하게 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 채선아> 그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 조석영> 지금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고 콘텐츠가 너무 많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이렇게 선택지가 많으면 사람들은 그중에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 실패하지 않고 싶어서 계속 간만 보다가 정작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을 다 쓸 수 있다는 거예요. <메타 인지의 힘>이라는 책을 쓴 IT비평가 구본권 박사에 따르면, 최고의 선택을 할지, 적당히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지 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저희 댓글에도 "적당한 포기가 답이네요" 보내주신 분이 있는데 바로 이겁니다. 이 책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자기가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핵심이고, 그러려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의 욕구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 채선아> 마치 뷔페식당처럼 콘텐츠가 종류별로 쏟아져 나오는 거잖아요. 거기서 최고의 맛을 찾겠다고 하나하나 다 맛보면 정작 자기가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 못 먹고 배가 차버리거나 배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거군요. 오늘 여기까지, 시성비 사회의 '빨리 감기 중독'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조석영 PD, 신혜림 PD, 수고하셨습니다.
 
◆ 조석영, 신혜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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