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대 본관 전경. 경북대 제공3월 개학을 앞두고 많은 대학들이 2024학년도 1학기 등록금 인상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지방대학의 열악한 재정사정을 감안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올린다고 나설 일인데 미동도 없다. 오히려 일부 대학은 선제적으로 등록금을 동결한다고 선언하는 상황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재정 형편을 감안하면 올리겠다고 떼라도 써야할 판에 왜일까? 대학관계자들의 말 속에 그 답이 있다.
지역의 A대학 관계자는 24일 "재단 적립금을 가져와서 학교운영 경비를 충당하는 상황이지만, 갈수록 인구절벽이 심해지는데 등록금까지 올릴 경우 행여나 올해 입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입학 인구가 감소해 신입생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운데 그나마 지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것.
등록금 동결이 유력한 B대학 간부는 "등록금 인상을 희망하지만 어려울 것"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유는 다가오는 총선거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등록금 심의에는 여러 가지로 변수가 많고 특히 이번에는 선거가 임박해 자칫 잘못하다간 모난 돌이 정맞는 격이 될텐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으냐"고 말했다.
"등록금을 동결하면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교육부가 국내 대학들에게 제시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등록금을 동결해야 '국가장학금2' 지원군에 편입될 수 있다. 사실상 '올리지 말라'는 지침인데 이를 어기고 등록금 인상을 강행할 장사가 없다는 것이 대학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B대학의 현실은 학교운영에 까지 적지 않은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 등록금이 동결된 지난 10여년 동안 최저임금과 물가인상요인은 지속적으로 학교운영에 반영돼 왔고, 이로인해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자 궁여지책으로 수 백명에 이르는 교직원 수를 대폭 줄이고 계약직으로 대체하는 처방을 단행했다. 등록금을 못 올리니 아쉬운대로 경직성 경비는 국고지원액으로 메우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액 일부를 대학 경직성 경비에 쓸수 있게 됐다.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는 2월 새학기 등록을 앞두고 경북대와 대구대학교가 등록금 동결을 결정했다. 나머지 대부분 학교들도 동결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지방대의 재정사정을 감안할 때 정부보조를 외면하긴 어렵고, 인상을 결행해 위험부담을 나홀로 떠안을 만한 이점도 없기 때문이다.
경북대는 지난 5일 등록금심의위에서 동결 결정을 내림으로써 올해까지 16년째 동결 내지 인하하는 초유의 기록을 작성중이다. 다른 대학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계열별 학기 수업료는 인문사회계열 178만원, 자연과학 217만원, 공학 233만원, 치.의학 450만원 수준이다.
올해까지 한 두해도 아니고 최장 16년째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니 어느 대학할 것 없이 재정사정은 말이 아니다. 현재의 대학 사정 상 교육서비스 질 향상을 꾀하는 건 고사하고 살아남기에 급급한 상황이라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자연스럽게 분출하고 있다.
C대학의 한 교수는 "현재는 여권의 모든 시계가 선거에 맞춰져 있지만 선거가 끝나고 하반기에는 뭔가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고, 또다른 지역 대학의 고위관계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하지만, 교육부의 대학정책 기조에 변화가 오면 하반기부터 (등록금 인상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수도권집중과 인구절벽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 높은 지역 대학 소속 학생들의 중도탈락률(10%를 상회하는 수준)은 지역대학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 지 여실히 보여주는 조건들이다. 여기에다 등록금 인상의 자율성까지 16년째 묶어놨으니 지역 소재 대학은 할 수 있는게 없는 힘겨운 처지다.
이런 형편이 지속된다면 대학의 변화와 혁신은 요원해진다. 인재의 이탈 가속화와 교육서비스 질 저하의 악순환은 어찌보면 당연할 일 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