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어차피 감방 안 가'…나이를 무기화하는 촉법소년

지난해 11월 경찰은 두 달간 절도 15건 등 모두 30건의 범죄를 저지른 14세 미만 A군을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감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찰은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해 법원으로부터 긴급동행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긴급동행영장이 발부되면 만 14세 미만이라도 소년시설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만 13세의 A군은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 걸 알고 계속 범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소년범들은 영화 아저씨에 나온 대사 "이거 방탄유리야~"처럼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촉법소년' 규정을 마치 방탄유리로 알고 "나 촉법소년이야 어쩔 건데~"식으로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영화에서는 방탄유리가 완벽한 방탄이 안됐지만 현실에서는 '촉법소년' 규정이 때로 완벽한 방탄유리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나이를 무기로 믿고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범죄는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의 경우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소년법상 보호처분만을 받게 됩니다.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은 형사처벌과 보호처분 모두 대상이 되지 않아 입건 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형법 9조는 촉법소년을 형사처벌의 면제대상으로 두는 이유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가혹한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보다는 교화와 교육을 통해 교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욱 바람직하다고 설명합니다.
      

촉법소년 보호처분 접수 건수 21% 증가

대법원에 따르면 19세 미만 미성년자 소년보호사건 접수 건수는 2013년 4만 3035건에서 증감을 반복하면서 2023년 11월 기준 4만 5897건입니다.
촉법소년 사건 접수는 2013년 1만건에서 감소하다 2017년부터 증가하면서 2023년 11월 기준 1만 8786건으로 2013년에 비해 87.8%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범죄소년 사건 접수는 3만 2928건에서 21.1%감소한 2만 5958건입니다.
     
소년보호사건을 접수 받아 보호처분 결정을 받은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2013년 3만 1952명에서 2022년에는 2만 4933명으로 감소했지만 촉법소년은 4334명에서 21.0%가 증가한 5245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촉법소년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증가하면서 2022년에 21.0%가 됐습니다.
    
이 기간 연령별로 보면 10세는 42명에서 242.9% 증가한 144명, 11세는 247명→523명, 12세는 640명→1196명, 13세는 3391명→3382명입니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이란 19세 미만 청소년들이 범죄를 범했거나 우려가 있을 경우 선도하기 위해 보호자 또는 적당한 자의 감호에 위탁, 소년원 송치 등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보호처분은 1호 '보호자 감호 수탁' 부터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까지 구분해 처분을 받습니다. 크게 감호위탁,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의 처분이 이뤄집니다.
     
가장 강한 처분인 소년원 송치는 8호(1개월 이내), 9호(단기), 10호(장기)입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소년원 송치 처분은 2022년 보호처분 2만 4933명 중 2198명(8.7%)이 8~10호, 5·8호 병행 처분은 10년 전인 2013년 4287명(13.4%)에 비해 48.7%가 감소했습니다. 소년범 대부분은 1호에서 5호 처분을 받거나 1~7호 병행 처분을 받았습니다.
    

촉법소년 강력범죄 증가…살인도 14건

특히 촉법소년이 저지른 강력 범죄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각종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촉법소년의 수는 2020년 9606명, 2021년 1만 1677명, 2022년 1만 6435명, 2023년 7월 기준 1만 1275명입니다.
     
2017년부터 2023년 7월까지 5대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가 78.3%(5만 6766명)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절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50.2%(3만 6378명)였고, 폭력 24.0%(1만 7403명), 강간·추행 4.0%(2904명), 방화 0.5%(293명) 순이었습니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촉법소년의 수는 14명에 이르렀지만 이들 모두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약범죄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지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마약범죄로 검거된 촉법소년은 단 3명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 15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7월까지 17명의 촉법소년이 검거됐으며, 이 중 14명은 다이어트 식품인 디에타민을 유통·복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최근 10여년 동안 가정법원에 접수된 촉법소년의 '패륜범죄' 사건 수도 폭증했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가정법원에 송치된 5대 강력범죄 혐의를 받는 촉법소년의 '연도별 통계'를 살펴보면 존속상해·존속폭행 건수는 2014년 1건에서 2022년 96건으로 폭증했습니다.
    

촉법소년 제도가 '소년범죄 증가시킨다' 92.2%

촉법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성인이 저지르는 범죄 못지 않게 흉포화되고 상습화되는데도 여전히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이 면제됩니다. 엄벌을 받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에 데이터 기반 리서치 기업 메타서베이가 메타베이 서비스를 통해 촉법소년 제도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촉법소년 제도가 청소년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92.6%가 촉법소년 범죄 형량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나아가 '촉법소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85.4%에 달했습니다.
    
청소년 범죄의 원인에 대해 응답자들의 38.1%가 '미흡한 처벌'을 꼽았고 '가정 환경' 32.9%, '자극적인 미디어' 11.2%, '교육 환경' 9.2% 등으로 응답했습니다.
'청소년 재범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는 44,7%가 '처벌 강도 강화'를 꼽았고 '처벌 연령대 하향' 38.5%, '교육 및 재활 프로그램 확대' 7.2%, '사회적 관심 증대' 5.3% 등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촉법소년 제도…사회는 변화는데 법은

법무부는 2022년 11월 형사 미성년자 기준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소년법·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촉법소년 기준을 현실화해 소년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한다는 목적이었습니다.
법무부가 제시한 주요 선진국들의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연령 기준도 13세 미만인 나라도 있습니다.
프랑스 13세 미만, 캐나다 12세 미만, 영국·호주 10세 미만입니다. 미국은 만 7세 등 주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지만 뉴욕주 등 대다수 주에서 13세 미만 기준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반면 덴마크·핀란드·스웨덴·이탈리아는 촉법소년 기준 연령이 15세로 우리보다 높습니다.
    
법무부의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UN(국제연합)의 국제 인권기준이 요구하는 소년의 사회복귀와 회복의 관점에 어긋나며,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대법원 법원행정처 역시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권고와 맞지 않고,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추더라도 경미한 청소년 범죄는 현행과 같이 소년부 송치 등의 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실제 입법화가 되더라도 강간, 강도 등 강력범죄만 처벌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개정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춤으로써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약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대다수의 선량한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어린 나이를 믿고 대담하게 '나 촉법소년이라 어차피 감방 안 가'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몰지각한 청소년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현행 촉법소년 기준 연령이 제정된 것은 1958년입니다. 현재는 2024년, 66년 동안 우리 사회는 크게 변했습니다. 교육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청소년들 역시 어릴 때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법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던 '촉법소년' 제도가 이대로 유지되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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