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주차된 오토바이. 연합뉴스 대학생 지수 씨는 학원 강사 일을 반년 정도 하다 그만뒀다. 학부모와의 상담, 학생 성적 향상에 대한 압박이 컸기 때문이다. 형편상 돈은 벌어야 했기에 음식 배달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오토바이를 탔다.
1년 6개월간 그렇게 밤에 일하다 험한 일도 여러 번 겪었다. 50대 남성이 음식값을 주지 않고서 줬다며 구타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술을 시킨 미성년자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집에 끌려가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로 맞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간단히 눌러 경찰서에 연락이 닿는 기능이 없었다면 더 큰 일을 당할 뻔했다.
신간 '일하다 아픈 여자들: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빨간소금)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기획한 책이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등 저자 6명은 산재 위험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 19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련 통계를 분석해 책에 담았다.
책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6월까지 18~24세 청년의 산업재해 사망 1위 직종은 배달 라이더다. 전체 사망자 72명 중 44%를 차지한다. 불안정한 고용조건, 건별로 책정되는 치열한 경쟁, 묶음 배달 등이 산재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여성 배달자들은 이런 산재나 공상처리(회사에서 치료비만 받는 것)를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폭행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적다. 여기에는 회사 측의 주도면밀한 '작업'도 있지만, 남성 동료에게 받는 배척도 작용한다고 한다. '여자애들이 꼭 배달하다가 저런 사고 쳐서 그걸로 회삿돈 타 먹는다' '여자애들은 운전도 못 하면서…' '맨날 배달 늦게 온다고 고객 불만도 심한데 왜 채용하는지 모르겠다' 등 배달 여성 라이더를 바라보는 동료 남성들의 시각은 삐딱하다. 지수 씨는 "그런 것들 때문에 눈치 보여서 (공상처리 요구를) 잘 못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배달 등 남성들이 주로 일하는 영역에만 '여성 산재'가 희박한 건 아니다. 여성 근무자가 대부분인 일터에도 '직업병'이 잇따른다.
항공기 승무원 유진 씨는 식음료가 담긴 무거운 카트를 밀고 당긴다. 머리 위에 있는 수화물 칸에 짐을 올리고 내리는 일도 반복한다. 26년 차 객실 승무원인 그는 이제 맥주 330㎖ 캔 20개에서 24개 정도는 혼자 들고 다닌다. 일은 능숙해졌지만, 그 대가로 여기저기 관절이 좋지 않다.
더 큰 걱정은 방사선 피폭이다. 특히 2010년 이후 우주방사선이 많은 북극지방을 통과하는 항로가 늘면서 승무원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2020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 관리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객실 승무원 우주 방사선 평균 피폭선량은 2019년 평균 3.03mSv(밀리시버트)에 이른다. 안전 관리 규정 수치(6mSv)를 넘지 않지만, 이는 1년 치 피폭선량만 조사한 결과다. 전체 근무 기간 누적 피폭선량은 선임의 경우, 기준치를 훌쩍 상회할 것으로 저자들은 전망한다. 유진 씨도 방사선이 몸에 쌓이면 암 발생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누적 피폭선량은 주로 노년기의 암 발생 빈도에 영향을 미친다.
책은 이 외에도 장애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일하다 아픈 여자들'의 산재 문제를 정조준한다.
저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낙인으로 주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했다"며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