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새벽 내내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앞으로 버스들이 지나다녔지만, 이날 하차한 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르게 드물었다. 양형욱 기자'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아오던 새해 첫 날 새벽. 코로나19 종식 이후 첫 일출 행사를 반기며 전국 해맞이 명소마다 '구름 인파'가 몰렸던 그 때,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감을 구하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을 찾았다.
지난 1일 오전 4시 인력사무소들이 밀집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일대. 작업복을 입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 일감을 찾기 위해 모여들었다.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나 중국 재외동포 출신 노동자들이 많았고, 한국인 노동자들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2도까지 떨어진 쌀쌀한 날씨 탓에 이들은 털모자와 목도리로 추위에 단단히 대비했다. 어떤 이들은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먹으며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도 했다.
1일 오전 4시 30분쯤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 사무소 주변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양형욱 기자30여 분쯤 지났을까, 일용직 노동자들은 어느새 50여 명까지 늘어나 주변 도로를 가득 메웠다. 보통 이곳에 모이는 일용직 노동자 수(100여 명)의 약 절반 수준이다. '새벽 노동자들의 버스'로 알려진 '6411 버스'에서는 매 시간마다 노동자 한두 명만 내릴 뿐, 이곳에서 정차하는 시민들은 드물었다.
일용직 노동자 A씨는 "오늘이 신정 연휴지 않나. 오늘 온 사람들은 '혹시 일감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왔다"며 "(일감이) 손에 걸리면 걸리고, 안 걸리면 집에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1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 사무소 정문 앞에 '신정 연휴 휴업'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양형욱 기자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하려는 노동자들의 바람과 달리, 3일 동안 이어졌던 '신년 연휴' 기간 동안 건설 현장도 쉬면서 인력 사무소 문은 굳게 닫혀 열릴 줄 몰랐다. 인력 사무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1일 신정 휴무'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그나마 불이 켜진 인력사무소 안에도 정작 직원들이 없었다.
평소라면 일을 나가기 시작해야 할 오전 5시가 넘어도 인력 사무소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허탕을 친 노동자들은 서서히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을 드러내 듯, 담배꽁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 B(69)씨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 좋으니까 한국도 마찬가지로 건축량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일자리가 다 없어지고 일을 구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며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서 돈을 좀 벌고 싶다"고 한탄했다.
2024년 갑신년 새해 첫 날인 1일 새벽, 일용직 노동자 50여 명이 일감을 구하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으로 모였다. 양형욱 기자
일부 노동자들은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동료들과 잡담을 나눴다. 어떤 이들은 일감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동료 노동자들과 새해 첫 날에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나왔다고 웃어 넘기기도 했다.
새해 첫 날 꼭두새벽부터 인력시장을 찾은 일용직 노동자들은 새해 소원으로 '열심히 일할 기회'를 꼽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건설업체들의 건설 수주량이 줄면서 갈수록 일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중국 재외교포 오호산(58)씨는 "(작년에)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을 자주 못 했다"며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 안 하고 잘 살면 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른 일용직 노동자 C씨는 "중국 한족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가뜩이나 일이 없는데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아쉬워하며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것 말고 무슨 말할 게 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