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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유도 81kg급 시상식. 일본대표로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 내 머릿속엔 무수한 상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국 스태프, 감독님들이 나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길고 길었던 연습 생활이 눈앞에 스쳐지나가자 감정이 북받쳤다. 힘겹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드디어 이 자리까지 올랐다.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유도 최고!" (- 추성훈 자서전 ''두개의 혼'' 125p)
#2. 2004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일본 오사카돔)에서 복서 출신 프랑소와 보타와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는 1라운드 1분 54초 만에 끝났다. 암바로 TKO승을 거뒀다. 승리에 대한 기쁨보단 ''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나도 모르는 새 데뷔전의 중압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경기에 이기고 나면 이 말만큼은 꼭 하리라 생각했었다. "유도가 최고다!" (- 187p)
12일(한국시각) ''UFC 100''에서 앨런 벨처(25, 미국)와 UFC 데뷔전을 치르는 추성훈(34, 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경기 후 다시 한번 ''유도 최고''를 외칠 수 있을까.
추성훈에게 유도는 인생 그 자체다. 3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유도장을 찾았던 그는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1년 일본으로 귀화한 것도 유도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때문이었다. 그는 "국적을 변경하는 것으로 내 꿈(올림픽 출전)을 이룰 수 있다면 당연히 국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본인의 자서전에서 고백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내 한 방송사의 유도 해설을 맡았을 땐 설렘보다 상심이 컸다. 남자유도 81kg급 경기가 열리던 날,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손에 넣고 싶었던 꿈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지만 본인은 시합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론 ''단지 일을 하러 갈뿐이야'' 되뇌였지만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이 처한 입장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고 했다.
비록 올림픽 출전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추성훈의 유도 사랑은 한결같다. 일본 격투기단체에서 활약할 당시 그는 불리함을 무릎쓰고 종종 유도복을 입은 채 경기에 임했다. 양쪽 어깨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새겨진 도복을 툭툭 치는 승리 세리머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