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우리카드 대 대한항공 경기에서 우리카드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277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한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프로배구 감독 통산 역대 최다승 감독을 어떻게 수식해야 할까. 대기록의 장본인에게 묻자, 쑥스럽다는 듯 답변을 피했다.
우리카드 우리WON 신영철 감독은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도드람 V리그 남자부 1라운드 대한항공 점보스와 홈 경기에서 대역전승을 거뒀다. 사령탑으로서 정규 리그 277승(214패)째를 쌓았다.
신 감독은 'V-리그 사령탑 최다승'이라는 역사적인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앞서 '명장'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의 276승(74패)을 넘어섰다. 앞으로 신영철 감독이 거둔 모든 승리는 신기록이 된다.
KOVO 제공신 감독이 이끄는 우리카드는 이날 디펜딩 챔피언 대한항공을 상대로 먼저 1, 2세트를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3, 4, 5세트를 내리 따내 세트 스코어 3 대 2 (13-25 32-34 32-30 25-18 17-15)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신 감독은 "최다승이라고 하니까 기분은 좋다. 개인으로선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잘할 수 있게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구단과 선수들이 잘해주니까 기회가 온 것 같다. 고맙다"고 공을 돌렸다.
사실 신 감독은 경기 전 최다승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신 감독은 '지금껏 많은 승리 중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냐'는 질문에 "기억을 해내야 하는데, 솔직히 크게 기억에 남는 경기가 없다"며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경기 후 신 감독의 답변은 달라졌다. "이번 경기는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라고 생각한다"며 "지고 있다가 그것도 대한항공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둬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것.
KOVO 제공사실 우리카드가 경기 초반 벼랑 끝으로 몰릴 때까지만 해도 신 감독의 대기록은 다음 경기로 미뤄지는 듯했다.
패배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훈련 때 얘기했던 부분을 선수들에게 강조했다"고 밝다. 그러면서 "항상 훈련을 마치면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오늘 1, 2세트엔 이를 안 지킨 선수들이 몇 명 있어서, 우리가 추구하는 배구를 못했다"며 "공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이후 신 감독은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보이며 이후 3, 4, 5세트를 연달아 집어삼켰다. 이 비결에 대해선 "일단 선수들이 끝까지 버텨준 힘이 있었다"며 "대한항공 선수들이 리듬, 체력이 깨진 틈에 스피드 있게 플레이를 하다보니, 상대 선수들이 체력 소모가 많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배구란 게 분위기가 크다. 결정적일 때 공격을 잘 해줘서 흐름이 왔던 것 같다"고 되새겼다.
KOVO 제공감독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은 자신 있게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선수들과 약속을 잘 지킨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감독과 선수 간에 두터운 신뢰가 형성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두 번째로는 선수 육성 능력이다. 신 감독은 "지도자 생활의 밑바닥이 코치부터 올라오다 보니 선수를 만드는 데는 자신감이 있다"며 "선수가 잘 따라와 주기만 하면, 기본기부터 다지는 건 어느 지도자보다 자신 있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불리고 싶은 호칭에 대한 질문엔 "제가 뭐라고 말씀 못 드린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3자가 불러주는 대로 호칭이 정해지는 것 아니냐"며 웃음을 보였다.
KOVO 제공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신 감독은 "앞으로 제 최다 승리 기록이 깨지지 않게 하겠다"며 "안 깨지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고 야망을 드러냈다. 또 "연승 중인 팀이 한 방에 무너지지 않게 준비를 잘하겠다"고도 답변했다.
이날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신 감독에게 영예를 안겨준 현재 V-리그 득점 1위 마테이 콕(199cm) 역시 사령탑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마테이는 "정말 대단한 기록을 세우신 것 같다. 첫 번째로 이름이 쓰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며 존경을 표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은 경험, 지식 모두 그 누구보다 풍부하신 분"이라며 "선수들이 잘 받아들이고 있어서 팀과 내가 동시에 잘 되고 있다"고 박수를 보냈다.
미소 짓는 신영철 감독. KOVO 제공
앞서 신 감독은 경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감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고, 그만두려 했다"고 속내를 토로한 바 있다. 이어 "내가 그만두더라도 누군가가 그 자리에 올 텐데, 이왕 맡은 거 다시 잘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며 "지도자라는 건 도망간다고 좋은 게 아니다. 부딪혀서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고 첨언했다.
신 감독은 그렇게 명장이 됐다. 2004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서 감독 데뷔 이후 대한항공, 한국전력, 우리카드를 거치며 최고의 감독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끝까지 버틴 신 감독은 결국 모든 이의 박수를 받으며 한국 배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