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선감학원 피해자 이모씨가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친구의 유품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경기 선감학원 시설 폐쇄 40년 만인 지난해 희생자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첫 시굴이 이뤄진 데 이어, 2차 발굴에서도 수백 점의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돼 관심이 쏠린다.
이를 근거로 추가 '진실규명 결정'이 예고된 가운데, 아직까지 공식 사과와 후속 조치 계획을 내놓지 않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 발굴 '희생자+가매장 확인', 12월 2차 진실규명
25일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날 안산 선감학원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를 열고 40여 기 분묘에서 치아 210점과 단추 등 유품 27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올해 연말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2차 진실규명 결정을 위해 희생자와 책임자, 암매장 여부 등을 살피려는 실지조사 결과 발표다.
이번에 발굴된 유해·유품은 모두 237점으로 지난해 1차 시굴 대비 3배 규모다. 정밀 인류학적 감식과 행정안전부 등의 협의를 거쳐 세종 추모의 집 등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상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이 사건 조사내용과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치아 윗부분(크라운)의 발달 정도와 마모 상태 등에 관한 감식 결과, 희생자들의 연령대는 12~15세로 추정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분묘 길이가 대부분 1m 안팎에 깊이는 5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몸집이 작은 아동들을 가매장 형태로 땅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우종윤 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모든 분묘가 비정상적인 형태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치아 감식으로 추정된 12세에서 15세의 나이로 매장된 것 같다"고 했다.
땅 밖으로 나온 진실…'과거사 정리' 촉구 지속
이로써 공식기록에 의한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 수인 24명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가 확인됐다.
해당 사건 관련 원아대장상 입소 아동은 4689명으로 834명이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탈출 아동들은 고립된 섬인 선감도 주변에서 상당수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9월 분묘 5기에 대한 1차 시굴에서 치아 68점과 단추 등 유품 7점을 수습했다.
경기 안산 선감학원 사건 관련 실지조사에서 발굴된 아동으로 추정되는 치아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이후 진실화해위는 같은 해 10월 선감학원 사건의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유해가 확인된 만큼, 국가와 경기도는 유해발굴을 신속 추진하고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가 직접 사과하고 위로금과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등 피해지원에 나서는 등 과거사 정리에 적극 행보를 보였다. 다만, 발굴 확대에 대해서는 국가가 주도하면서 도는 적극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실화해위는 추가 발굴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오는 12월 2차 진실규명 결과를 공식화할 방침이다.
이상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은 "선감학원 유해 발굴은 인권침해 사건 중 진실화해위의 첫 사례로서 의미가 크다"며 "1차 조사 결과 발표 때 권고한 국가의 사과와 후속 조치 사항들이 조속히 이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 권고에도 정부 태도 '미온적'
지난 20일 진행된 선감학원 유해발굴 현장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진실화해위 권고가 나온 지 1년이 넘도록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선감학원 사건 당시 가해자이던 공권력의 핵심은 국가였다. 부랑인 문제 해소와 도시환경 정화를 명분으로 아동들의 신병을 확보해 수용소를 운영한 최상위 주체가 법무부와 내무부, 보건사회부 등 정부 부처였기 때문이다.
실제 1956년 국무회의에 오른 '부랑아 근절책 확립의 건' 문서에는 법무부, 내무부, 보건사회부 등 정부 부처명이 새겨져 있다.
지난해 진실화해위도 1차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 '권위주의 시기 위헌, 위법적인 부랑아 정책 시행으로 아동 인권침해가 초래됐다'는 취지로 국가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랑아로 날조된 아동들이 가혹행위를 당하게 만든 데 대해 각 부처가 사과하고, 특별법 제정 등 조치를 해야 된다"는 진실화해위 권고에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
이는 관련 법에도 위배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34조에는 '소관 국가기관은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올해 법개정으로 권고 이행 관리의 주체가 행안부 장관으로 지정됐고, '권고 3개월 내 이행계획 제출'과 '조치 결과 제출' 등 세분화된 규정도 마련됐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권고를 받아들여 사과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 있느냐"는 야당 의원 질의에 "국감이 끝나는대로 진실화해위 권고문을 검토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피해자 "대통령이 나서야"…정부 "아직 논의 중"
김윤선씨에 대한 선감학원 원아대장에는 사실과 다르게 가정불화와 부모의 가출, 걸식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씨 제공이처럼 정부 차원의 후속 조치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피해자들의 애만 태우는 모양새다.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피해자들은 금전적 배·보상과 신체·심리 치료 지원 등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을 받는 데 한계에 부딪힌 처지다.
진실규명으로 과거 원생들이 피해자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 만큼, 고령의 생존자와 유족들이 복잡한 소송 절차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정부 의지 없이는 성사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이와 관련해 유엔 인권 특별조사관 측이 "독립된 국가기구에서 규명한 사건에 대해 왜 개별 소송으로 구제받아야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피해 생존자인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작년에 비로소 피해자 자격을 얻었다. 권고사항이 나갔는데도 정부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담당부서의 답변조차 없어 피해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행정에 물고가 틀 것이다. 나약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정부 측은 일부 협조하고 지원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적극 협의하고 있고, 공식 사과 등에 대해서는 시점을 논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유해 발굴을 위해 경기도, 안산시 등과 실무 협의를 하고 있고, 트라우마 치료 관련 시범사업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며 "공식 사과는 시기 등 관련 절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70년대 선감학원 원생들의 모습.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군인 양성을 위해 설립한 선감학원은 해방 이후 1946년부터 1982년 폐쇄되기까지 경기도 내 부랑아 수용소로 쓰였다. 실제로는 부모와 주거지가 있고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복장이 남루하거나 주소를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끌려가는 사례가 잇따랐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원생들은 염전, 농사, 축산, 양잠, 석화 양식 등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것을 비롯해 급식 양이 부족해 열매, 들풀, 곤충, 뱀, 쥐 등을 잡아먹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시설 내 가혹행위로 심각한 신체·정신적 후유증을 앓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아동들의 인적 사항을 임의로 변경해 실종자가 발생하거나 가족관계와 원적을 회복하지 못한 사례들도 조사됐다. 이는 CBS노컷뉴스를 통해서도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관련 문서 등을 통해 보도됐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2022년 10월 14일자 ""조작이었다" 허위이력으로 선감학원 채운 '국가'[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