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정다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이 장기화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옵니다. 빨라도 두 달 이상 사법부 수장의 공백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후임 대법원장 후보자가 누가 되느냐에 대해서도 여전히 우려가 큽니다. 권영철 대기자 나와 있습니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된 게 35년만이었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는 87년 6월 항쟁 직후 민주화 열기가 한창인 시기였고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이었기도 했습니다만,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가 군사정권에 협력하고 시국사범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한 이력이 문제가 됐습니다.
국회의원 295명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141명, 반대 6명, 기권 134명, 무효 14명으로 가결정족수인 148표보다 7표가 부족해 부결됐습니다.
이균용 후보자의 경우 역시 여소야대 정국이긴 합니다만, 국회의원 29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압도적인 차이로 부결됐습니다.
◇정다운> 누가 인준 부결의 책임을 가장 무겁게 져야 하나요?
◆권영철> 대통령실이나 여당은 야당에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부결을 정치투쟁이라고 폄하했습니다.
발언하는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 연합뉴스이도운 대변인의 발표 들어보시죠.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준 부결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후보를 지명하지 않은 인사권자의 책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윤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오기인사'니 '불통인사'니 하는 평가가 나오는데, 대법원장 후보자도 친분에 의한 것 외에는 납득할만한 설명도 제대로 된 검증도 없었습니다.
판사 출신인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헌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법관 대법원장 국회 동의가 당연히 그냥 통과 의례인 것처럼 하는 건 헌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거든요, 이번에 대법원장 부결된 거는 헌법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방증이에요" ◇정다운> 이균용 후보자의 인준이 부결됐으니까 새로운 후보자를 찾아야 할 텐데요. 언제쯤 지명될까요?
◆권영철> 내일부터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니까 빨라도 11월은 되어야 새로운 후보자가 지명될 걸로 전망 됩니다. 물론 국감중에 지명 할 수도 있다는 설이 나돌고는 있습니다.
인사검증과 국회 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연말은 되어야 새로운 대법원장이 임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나옵니다.
만약에 다음 후보자의 경우에도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사법부 수장 공백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길었던 사법부 수장 공백은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후임 선출을 두고 법관회의와 이승만 대통령이 충돌하면서 6개월 여 공석이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타협을 통해 7개월여 만에 조용순 2대 대법원장을 선출했습니다.
내일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고, 모레 대법관회의를 열어서 대법원장 대행의 업무 범위를 정할 걸로 알려졌습니다.
대법원에서는 대법원장 공석을 2개월 정도로 보고 그 기간 동안 대법원장이 해야 할 필수 업무 중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리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대법원장의 가장 핵심 임무는 '전원합의체 주재', 올 연말로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물색 및 제청', '법관 재임용 심사' 등입니다.
대법원. 연합뉴스◇정다운> 대법원장 공백이 길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권영철> 사법부 수장 공백 상태가 장기화 될 경우 내년 2월에 있을 정기 법관인사를 권한대행이 할 수도 있습니다. 안철상 권한대행의 임기가 내년 1월 1일까지인데 후임 대법원장 임명이 늦어질 경우 다음 권한대행은 김선수 대법관이 됩니다.
김 대법관은 노동전문 변호사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재야 변호사로 잘 알려진 분인데 인사권을 김 대법관에게 맡기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설마 법관 인사권을 김선수 대법관에게 주겠느냐는 관측과, 이러다 인사권을 김선수 대법관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정다운> 결국 어떤 후보자를 지명하느냐가 변수가 되겠군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35년 전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 인준이 부결되자 여·야를 떠나 신망이 높았던 이일규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인준이 됐고요.
이일규 전 대법관은 군사독재 시대에도 간첩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의 불법 장기구금과 신체상 부당 대우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가 하면 수많은 소수의견을 내는 등 소신을 지킨 판사였습니다. 그는 대법원장 지명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는 청와대 쪽에 사법부 독립 보장을 요구했고 노태우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된 이균용 후보자와 달리 사법부내 신망이 두텁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후보를 지명한다면 국회 인준 절차는 무리없이 진행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최근 장관 후보자 지명에서 쿠데타를 옹호하는 신원식 국방장관이나 MB정부 시절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를 내세운 걸 보면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들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윤 대통령 특유의 오기인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윤 대통령을 잘아는 법조인들의 관측입니다. 이럴 경우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는 장기화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균용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부터 이 후보자는 다음에 지명될 후보자를 위한 희생타라는 분석들이 많았습니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도 여당의원들의 엄호 수준을 보면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보다 훨씬 부족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다운> 후보자로 누가 거론되고 있나요?
◆권영철> 가장 많이 거론되는 후보로는 오석준 대법관과 이종석 헌법재판관, 홍승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입니다.
오 대법관은 현직 대법관으로 지난해 청문회를 통과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학 다닐 때부터 '술친구'로 사적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논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다운> 이균용 후보자 역시 윤 대통령과의 친분이 논란이 되지 않았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법관의 경우 제척이나 회피, 기피신청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데, 공정성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관의 공정성도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꼽힙니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의 '술친구'나 친분이 두터운 사람을 임명한다면 사법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판사출신인 민주당 최기상 의원은 "가령 오석준 대법관이 후보로 거론되면서 그 사람 얼마 전에 청문회하고 임명동의 통과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잣대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 의원은 "이전 노무현 정부시절 김이수 헌재 소장 후보자의 경우 재판관 인사청문회는 통과했지만 나중에 헌법재판소 소장 때는 부결됐다. 그런 그 사례가 있기 때문에 혹시 정부 여당에서 오석준 대법관을 진행하면서 그 이유가 몇 달 전에 통과시켜줬으니 문제없지 않느냐는 식의 논리는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최 의원이 특정 후보자를 반대하기 위해서 말한 건 아니고요. 대법관 후보와 대법원장 후보는 잣대가 달라야 한다는 것과 대법원장의 경우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정다운> 대법원장은 후보 추천위원회가 없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정다운> 그런데 대법관은 후보추천위원회가 있잖아요. 검찰총장도 후보추천위원회가 있고, 공수처장도 후보추천위원회가 있는데 대법원장은 왜 없는 걸까요?
◆권영철> 제도가 마련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대법원장과 헌재소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자고 주장한 사람은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입니다.
황 변호사는 올 3월 법률신문에 기고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추천·제청 절차의 제도화'라는 글에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도 '후보추천'이나 '제청'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정근 변호사의 말 들어보시죠.
"대법관하고 검찰총장, 공수처장 등 더 낮은 직위도 하는데, 대법원장하고 헌재 소장은 왜 안 하냐는 거에요. 그게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한데 대법관이나 공수처장이나 검찰총장은 고유권한 아닌가요? 다 고유권한이지만 그래도 이제 여러 명이 모여서 좋은 사람을 뽑으면, 그 중에서 되면 아무래도 국회에서 동의 받기도 좋아지죠." 황 변호사는 노태우 정부 때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준이 부결된 뒤 여야의 신망이 두터운 이일규 후보자를 지명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대통령 입장에서는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지명하는 게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황 변호사는 "이번엔 이제 그렇게 됐으니까 두 번째 지명할 때는 또 오기를 부리면 안 된다"면서, "지금이라도 추천위원회를 꾸려서 야당에서 도저히 반대 못하는 사람을 추천하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최기상 의원도 "우리 헌법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렇게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이 과정이 저는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헌법적 책무라고 평가를 한다"면서, "지금이라도 대법원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추천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다운> 윤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자를 새로 지명할 경우 민주당이 또 반대할 수 있을까요?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권영철> 여당이건 야당이건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건 부담스러울 겁니다. 야당의 한 중진의원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거나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함량미달 후보자의 경우 제2, 제3 이라도 부결시키겠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지난 10월 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홍익표 원내대표의 말 들어보시죠.
"저는 분명히 윤석열 정부에 경고하겠는데요. 이런 인물들을 계속 보내면 제2, 제3이라도 저는 부결시킬 생각입니다.", "대법원장의 공백에 따른 혼란보다 부적절한 인물이 대법원장이 취임함으로 인한 사법부의 공황 상태가 더 걱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물을 어쩔 수 없이 해준다? 이거는 인사청문회 제도 취지에도 맞지 않고요. 사법부의 미래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다운> 어떤 후보자가 지명되어야 할까요?
◆권영철> 원론적인 얘기입니다만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후보, 사법부 내에서 신망이 있는 후보가 지명되어야 할 겁니다.
최기상 의원이 이균용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장 후보자의 기준을 언급했는데요. 그 대목 들어보시죠.
"'헌법에 따른 대법원장 덕목 10가지'라고 제가 표현을 해 봤습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다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라고 하나를 나눠 봤고요, 두 번째, '양심에 따라', 세 번째 '독립하여'로 나눠 봅니다. 최 의원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는 인권과 법치, 평등한 자유로 구분하고, '양심에 따라'는 재산, 자녀, 이웃과 친구로 나눴습니다. '독립하여'는 사법수호, 공정한 재판, 행정능력, 시대로부터 독립으로 나누어 10가지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부결은 정치권의 이런 저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이후 보여온 독단적 인사에 대해 국회가 임명동의권을 통해 제동을 건 첫 사례로 기록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