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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얼마 벌었어?" '잔소리 메뉴판'으로 본 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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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잔소리 메뉴판' 2016년부터 등장
취업·결혼·출산 당연히 여기던 기성세대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 모르고 잔소리
말대꾸로 반격하는 건 갈등 키우는 방식
진짜 격려와 관심 보여주는 법 고민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이번 명절 연휴가 굉장히 길잖아요. 명절이 좋긴 한데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분들이 많아요. 오죽하면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게 나왔거든요. 중고등학생, 직장인, 부모, 대학생, 이들한테 이런 잔소리를 하려면 얼마를 내고 하시라는, 선결제 시스템이에요.  

◆ 김만권> 이 잔소리 메뉴판 보면서 어른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큰 스트레스가 진짜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손희정> 특히 외모 관련한 메뉴를 보면, 진짜 한국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공통의 관심사 같은 것들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칭찬이면 칭찬, 아니면 걱정한답시고 외모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 채선아> 할 말이 없을 때 그 공백을 못 참고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첫째가 있으면 둘째는 언제 낳니, 혹은 딸이 있으면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지. 아니면 아들만 있는 집은 딸이 있어야지 좋지, 이런 식의 잔소리가 오가는 거죠.  

◆ 김만권> 요즘은 하나만 낳아도 힘든데 뭘 둘이나 낳으라고 (웃음)  

◆ 손희정> 이 잔소리 메뉴판이라고 하는 게 2016년쯤부터 온라인에 떠돌기 시작한 건데요. 그 이후로 종종 SNS에 어떤 게 올라오냐면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이번 추석이 얼마 벌었는지 두들겨 봤다는 식으로 (웃음)  


◇ 채선아> (웃음) 한 100만 원은 벌었겠네요. 이렇게 잔소리하는 분들의 입장을 좀 좋게 해석을 해보자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 김만권> 지금 청년들은 너무 취직하기도 힘들고, 취직 준비도 힘들고, 젊은 부부들은 둘이 살기도 너무 빠듯한데 자꾸 애까지 낳으라고, 그게 다 스트레스가 되는 건데요. 어르신들이 자신들 시대의 기준에 맞춰서 자꾸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죠. 그 시대엔 그게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취직하고, 아이 낳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는 그게 얼마나 과거보다 어려운 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이 없으신 느낌이에요.

 ◆ 손희정> 그게 또 '너 생각해서 그런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 보면 어르신들은 다 MBTI가 T인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주는 성향인 거죠. 근데 사실은 F성향 같은 공감을 할 필요도 있죠. 그리고 생각해봐야 하는 게, 청년들이 3포다 4포다, N포다, 하면서 연애, 결혼, 출산, 직장, 이런 걸 포기했다고 기성세대가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청년세대들이 포기했다는 것들을 보면 국가의 인구정책들에 관련된 것만 있어요. 국민을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의 기준만 가지고 이걸 못하거나 안하며 포기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자체가 옛 것이고 이미 가버린 시대의 기준이죠.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라떼는'의 잔소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고요. 저는 윗세대에게 이런 잔소리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아랫세대가 이걸 어떻게 유연하게 넘기는지도 중요한 것 같아요.

◇ 채선아> 그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 손희정> 최근에 연예인 김종민 씨의 '명절 잔소리 넘기는 법'이 화제가 됐는데요. '결혼해야지' 하면 '네, 해야죠'라고 답하고 '여자 만나야지' 하면 '만나야죠', '애 낳아야지' 하면 '낳아야죠' (웃음)  

◇ 채선아> (웃음) 마지막 말을 따라하는 거군요.  

◆ 손희정> 그걸 계속 반복하는 건데, 그러면 스트레스를 안 받느냐. 하루 만나면 또 한 6개월 안 보니까 너무 심각하게 화내지 말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만권> 그게 정확하게 제가 옛날에 했던 방식이었어요.

◇ 채선아> 그런 방식을 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말대꾸나 반격을 준비해갈 수도 있잖아요.  '나한테 이런 잔소리를 해? 그럼 나도 어른들의 약점을 건드려야지'라는 생각으로 '노후 준비는 제대로 되셨나요?' '자산은 얼마나 준비되셨나요?' 이렇게 준비를 해간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또 다툼이 되고. 여기에 잔소리 메뉴판이 나온다든가, 명절 잔소리를 비꼬는 듯한 칼럼 같은 게 나오기도 하잖아요.
 
◆ 손희정> 그 대표적인 칼럼 중에 하나가 김영민 교수의 2018년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인데요. 저는 그렇게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묻는 방식은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대화를 단절시키는 방식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긴 했었거든요. 잔소리 메뉴판 같은 경우는 이게 돈으로 환산된다는 게 좀 인상적이예요. 잔소리 메뉴판이 2016년부터 온라인에 떠도는데 2015-2016년이 '헬조선 담론'이 나왔던 시점이거든요. 어른들이 청년세대에게 N포 세대라면서 부정적으로 봤던 걸 청년세대가 '그런 걸 포기한 게 아니라 이 세계가 잘못된 거야. 기득권에 문제가 있어. 죽창을 들고 리셋해야 돼'라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잔소리 메뉴판이 등장했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 김만권> 사실 잔소리를 다른 공격으로 받아친다고 해서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잔소리를 듣고 '노후는 준비되셨어요?'라고 반격하면 '너한테 다 때려넣었다' 그러면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웃음) 결국은 싸움만 되는 증폭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어르신들이 주의하셔야 될 부분은 말할 때 의도야 어쨌든 듣는 사람이 격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게 격려의 말이 아닌 거거든요. 그래서 어른들도 '내가 어른으로서 말을 해줘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들어줘야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을 꼭 한다면 '쉬어가면서 해라'면서 어깨를 두드려주거나 토닥토닥 해주거나. 이런 게 더 격려가 되는 행위인 것 같아요.  

◇ 채선아> 관련해서 전문가의 글을 하나 봤는데, 정말 취업이 궁금하면 얘가 정말 취업을 할 건지 결혼을 할 건지, 명절 전에 미리 주변인들을 통해서든 알아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뭔가 가능성이 있거나 좋은 소식이 있다거나 하면은 다 같이 있는 데서 물어보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 같이 있는 장소에서 그럴 필요 없잖아요.  

◆ 손희정> 정말 평소에 관심이 있다면 소식들을 좀 체크하고 얘기하고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럼 청년세대가 잔소리 대신에 뭘 듣고 싶으냐, 어떤 얘길 듣고 싶으냐, 2017년에 설문조사한 걸 보니까 '용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를 제일 많이 듣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방식이 정말로 내가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채선아> 그리고 명절의 풍경 자체도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차례상이 엄청 간소화되고 있는데 작년에 성균관에서 '명절에 전을 안 부쳐도 된다' 이렇게 선언했거든요.

 
◆ 손희정> 깜짝 놀랐잖아요.  

◆ 김만권> 저도 깜짝 놀랐었습니다. 우리가 어쨌든 유교 전통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형식과 절차가 복잡하고, 홍동백서니 차례상에 뭐 하나 놓는데도 다 절차가 있고, 온갖 것들이 다 신경이 쓰였는데 사실 그런 것들이 실제로는 없는 것들이래요.
   
◇ 채선아> 그럼 전은 대체 지금까지 왜 부친 걸까요?

◆ 손희정> 그러니까요. 이게 언론에서 '차례상을 어떻게 차려야 된다 저렇게 차려야 된다'라고 하는 것들이 기사화되고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1960년대부터인데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거든요. 예전에는 한 마을에 같이 모여 살았잖아요. 그래서 종갓집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례상을 차린다고 하면, 구전으로 다 그게 공유가 됐는데 도시화가 돼서 마을이 찢어지기 시작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 가서 차례상 잘 차리고 있을까라고 하는 불안이 생긴 거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차례상은 이렇게 차려야 되네 저렇게 차려야 되네'하면서 1970년대에 가정의례준칙 같은 게 만들어지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또 사람들이 귀찮아하니까 성균관 같은 데서 간소화가 답이라고 강조하거든요. 그런데 재밌는 건 어쨌거나 명절 풍경이 바뀐다 해도 우리가 또 명절이라고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차례상 얘기도 계속되는 걸 보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 김만권> 간소화됐다 해도 지금도 차례상을 차리긴 하잖아요. 그러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기를 떠날 수 없죠. 최근엔 또 제가 차례상 차리는 일을 물려받아서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물가가 자꾸 오르잖아요. 지금 간소화한 상차림이 올라온 걸 보고 대충 가격을 계산해 봤는데 그래도 한 20-30만원 들어간단 말이죠. 요즘 사과 한 알이 막 1만 원씩 하거든요. 거기에 배 올리고 뭐 올리고 하다 보면 과일만 15만원이예요.
 
◆ 손희정> 그래서 올해 설 같은 경우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거 올린다면서 메론맛 아이스크림 올린 차례상, 이런 것도 나오더라고요. (웃음)  

◇ 채선아> (웃음) 그렇게 하면 저렴하면서 의미도 있겠네요. 오늘 달라지고 있는 명절의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고맙습니다.  

◆ 손희정, 김만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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