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실험미술가 성능경이 자신의 1980년대 연작 '현장'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문수경 기자 22일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 본관 1층.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가 성능경(79)이 자신의 80년대 대표 연작 '현장' 앞에 섰다. 중절모와 양말을 벗은 후 고교 시절 은사에게 배운 스트레칭을 변형한 동작으로 몸을 푼 그는 선글라스와 분홍색 샤워캡을 쓴 뒤 벽을 둘러싼 연작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부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예술이 뭐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알면 뭐하러 예술을 합니까. 대답할 수는 없지만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아트페어 키아프·프리즈 서울(9월 6일 개막)을 앞두고 갤러리현대가 선택한 작가는 성능경이다. 성능경 개인전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이 오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다.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해 온 갤러리현대와 '한국적 개념미술'을 개척한 것으로 인정받는 성능경이 함께하는 첫 전시다. 작가의 시대별 대표작 140여 점을 엄선한 미니 회고전이다.
작가는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과 함께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가로 손꼽힌다. 1973년 전위미술 단체 'Space&Time 조형미술학회'(ST)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술가의 몸과 행위가 중심이 되는 독자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개념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성능경, 그날그날 영어 3-84-65, 2003-2018.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수축과 팽창'(1976), '검지'(1976) 등이 대표적으로 일련의 신체 행위를 기록한 사진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이다. '수축과 팽창'은 작가가 손을 뻗어 몸을 최대한 부풀려 팽창시키고 바닥에 엎드려 최소한 수축시키는 행위를 기록한 사진 12장으로 구성된다. '검지'는 작가가 팔을 쭉 뻗어 검지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점차 입으로 검지를 가져가면서 초점을 수정해 촬영한 아홉 장면을 17장으로 인화해 수평으로 나열했다. 미술사학자 조수진은 "기성 미술이 신봉해 온 고상하고 영웅적인 미술가 관념에 도전하는, 한국 전위의 새로운 유형의 초상 사진"이라고 분석한다.
'현장' 연작은 신문과 사진, 드로잉 행위가 혼합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1980년대 신문 보도사진을 채집하고 이중 1500여 장을 선별해 마이크로 렌즈로 접사 촬영했다. 그후 먹과 세필로 35mm 필름에 당야한 편집기호를 그려넣고 젤라틴 실버 프린트로 확대 인화했다. 작가는 "신문 편집자가 제시하는 사진 해석을 무효화하고 재해석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성능경,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 1991,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성능경, 안방, 2001,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망친 에술'로 명명한다.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1991), '안방'(2001) 등은 '망친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 대신 네 남매 육아에 전념했던 작가가 핀이 안 맞거나 실수로 셔텨가 눌러져 찍힌 아이들의 사진과 사탕·껌 포장지를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안방'은 작가가 거주하던 안방을 촬영한 18장의 사진 작업이다.
성능경은 이번 개인전에 맞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23일 오후 5시에는 갤러리현대에서 퍼포먼스 드로잉 작업인 '우왕좌왕'(1998) 퍼포먼스를, 9월 6일 오후 9시에는 서울 고덕동에서 외국인 100명과 함께 하는 '신문읽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권영숙 갤러리현대 디렉터는 "작가가 신문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긴장감이 조성됐던 70년대 유신 시대와 달라진, 글로벌 시대의 풍경을 접할 수 있는 이벤트"라고 했다.
성능경, 우왕좌왕, 1998,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