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서울 구로구에 아파트 구입을 예정하고 있는 직장인 A씨(37)는 조만간 은행 대출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그는 "마침 운좋게 시기가 맞아서 일단 50년 만기로 서류를 접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차피 3년 뒤에는 중도상환이 가능하니 최대한 긴 기간으로 받아 대출가능 금액을 늘리고 월 부담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영향으로 전체 가계대출이 증가세를 보이자 정부가 50년 만기 주담대를 만 34세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전에도 50년 만기 상품은 정책금융상품 위주로 공급돼 왔다. 현재 신한은행만 만기가 40년이 넘는 주담대에 대해서 만 34세 이하로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높은 인기 끄는 '50년 만기 주담대'…"문 닫히기 전 서두를 것"
황진환 기자
지난 10일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4곳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은 10일 기준으로 1조2379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은행들은 지난달 5일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주담대 만기를 50년으로 늘린 상품을 잇달아 내놨다. 한 달여 만에 소비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가계부채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및 금융감독원 등이 10일 열었던 '가계부채현황 점검회의'에서 50년 만기 주담대는 최근 가계부채 상승의 원인으로 꼽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143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5조9553억 원 늘었다. 4개월 연속 증가세로 잔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 치웠다. 특히 주담대는 한 달 동안 5조9636억 원 급증했다.
50년 주담대 상품을 선택하게 되면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5억원을 연 5.5%금리로 빌려 거치기간 없이 원리금 균등상환을 하게 되면 30년 만기 시 월 원리금 상환액은 약 283만 8천원이지만, 50년 만기의 경우 약 244만 9천원이 된다. 이 경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줄어들어 대출 가능한 금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DSR 규제를 우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갚아야 할 총 이자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대출자가 부담할 총 이자액은 만기 30년의 경우 약 5억 2200만원이지만, 50년 만기가 되면 약 9억69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34세로 연령제한" 금융당국 고심…정부와 은행권에 비판도
금융당국은 10일 회의에서 "은행권의 대출 태도가 느슨해진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가계대출이 최근 급격히 증가한 것에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상품 판매도 일조했다는 시각이다. 일부 시중은행은 만기 50년 주담대를 60대에게도 판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금리가 높아져 신용대출이 많이 상환되는 등 영업환경이 어려워지자 주담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50년 만기 주담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검토된 공약이다. 또 지난해 6월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만기 연장으로 실행됐다. 정책보금자리론 등 보급이 확대된 정책금융상품과, 올해 초부터 완화된 부동산 규제 등이 가계부채 증가를 이끈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당초 정책금융상품도 30조원이 넘는 등 이미 가계부채 증가는 예고된 것이었다"면서 "갑자기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등을 원인으로 짚는 것은 당혹스럽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장기 만기 상품이 주택담보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연령 제한이 도입될 전망이다. 대출 상한 연령은 '만 34세 이하'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곧 은행연합회를 통해 은행권 공통 제한 기준이 내려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은행권 자율규제 방식이지만 각 은행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뒤늦은 연령 제한에 불만도 나오고 있다. 회사원 B(38)씨는 "정부의 연령 제한이 생기기 전에 대출을 받은 사람들만 운 좋게 이득을 보는 건가"라며 "대출받을 수 있는 액수가 늘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는데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