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여부 결정을 위한 재판이 열린 광주고등법원. 고영호 기자이른 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재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재판이 열린 가운데 이날 검찰과 변호인은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공방이 오갔다.
광주고등법원 제2-2 형사부(법관 박정훈 오영상 박성윤) 심리로 8일 오후 2시 30분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선 검찰이 먼저 방어에 나섰다.
공판 검사는 부녀의 살인죄와 존속살해죄에 대한 재심 여부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조사과정에서 검찰의 허위진술 유도와 회유·협박이 있었는지"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백씨 부녀가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조사받을 당시인 2009년 8월 24일 밤 9시 50분과 8월 27일 저녁 7시 31분 등 진술 녹화 영상을 제시하며 "살인 피의자의 억울함과 무죄를 말하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광주 검찰청. 고영호 기자이어 "검찰이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일관성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허위진술을 유도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영상에 나오듯이 딸이 농협 계좌번호를 외워서 작성하는 것을 보더라도 지적 능력이 낮거나 사회적 연령이 낮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녀 간 진술이 상반돼 누군가는 거짓말하는 상황이기에 통상하는 대로 대질조사를 하려했지만 못했다"며 "검찰이 부녀 간에 이간질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또 "백씨 부녀에게 누명을 씌울 어떤 이유나 동기도 없다"며 공정하게 수사했음을 강변했다.
검찰은 "담당 검사가 피의자 신문 조서를 허위로 만들려는 고의성도 없었고 부녀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도 언급하되 형사소송법대로 낭독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준영 변호사가 재판 직후 법정 앞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호 기자반면 변론에 나선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장과 의견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CCTV를 숨기려 하는 등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맞섰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영상에서 정모 수사관 태도를 보면 피의자들을 향해 웃거나 비웃고 있다"며 "영상 녹화가 되지 않은 부분의 조서를 검찰이 제멋대로 작성했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상당히 낮게 나왔고 딸이 마을 도서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장 진술 등이 있는데다 검찰 조사 등 낯선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검찰의 강압과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딸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료를 재판부에 수사기록으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박 변호사는 "딸이 '청산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를 죽여요'하고 했는데 이런 진술이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며 "검찰은 딸의 지적 능력이 낮은 것을 이미 알고 '모의'나 '고자질' 등 뜻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 등 오히려 지적 능력이 낮은 점을 '이용'까지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행에 사용했다는 막걸리 구입처와 범행 경로도 도마에 올랐다.
막걸리를 판매했다는 식당은 범행에 쓰인 750㎖ 용량의 막걸리는 취급하지 않았다.
딸이 막걸리를 구입하기 위해 집에서 순천 시내까지 오간 국도와 고속도로· 시내버스 등 경로에 CCTV가 10대 이상 있어 찍혔어야 했지만 검찰은 CCTV 자료가 없다며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막걸리에 탔다는 청산가리도 부녀가 오이농사를 하면서 이용한 것을 범행에도 사용했다고 검찰이 주장했지만, 20년 이상 오이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오이에 청산가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진술한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청산가리'와 '막걸리'가 핵심 증거인데 검찰은 이와 관련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으면서 재판부가 판단하지 못하도록 해 검사가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박 변호사는 재판부에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려주고 부녀에 대한 형집행을 정지하며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도 마지막 입장을 통해 "박 변호인 지적처럼 검사가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것이 많지만 검찰이 진실을 왜곡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부녀의 진술은 압박이나 허위에 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심 사유가 없으니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최후 진술에 나선 부친은 "학교를 다니지 못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오는 등 처지가 불우했다"고 말했고, 딸은 "엄마를 죽이지 않았는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사안이 중대하다"며 "검토할 부분이 많아 신중하고 충분히 검토해 재심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모씨 부녀는 지난 2009년 7월 순천의 자택에서, 아내이자 어머니에게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먹여 숨지게 한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 받아 복역하고 있다.
옅은 하늘색 수의에 마스크를 착용한 부친과 민트색 수의에 마스크를 착용한 딸은 2시간이 넘는 법정 공방을 지켜본 뒤 교도관들에 이끌려 법정 밖으로 나가 교도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