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경남은행에서 5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횡령 사고가 발생해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간 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BNK경남은행 지점의 모습. 검찰은 횡령 혐의를 받는 직원 이모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10여곳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BNK경남은행에서 500억 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서 은행의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600억 원대 횡령에 이어 또다시 은행 내부 직원의 대규모 횡령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불거지자 금융당국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은 모든 은행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TF'를 운영하고, 형식이 아닌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를 위해 대표이사, 이사회 및 임원의 내부통제 관련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1년 만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우리은행 사고와 '판박이'인 경남은행 500억 원대 횡령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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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BNK경남은행 횡령 사고는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 전모씨의 횡령 사고와 비슷하다. 직원 횡령을 막기 위한 순환근무제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경남은행 직원 이모(50)씨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부동산PF 대출 업무를 담당하면서 총 562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이미 부실화된 PF대출(169억원)에서 수시 상환된 대출원리금을 자신의 가족 등 제3자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77억 9천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2021년 7월과 2022년 7월에도 PF 시행사의 자금인출 요청서 등을 위조해 PF 대출(700억원 한도약정)을 가족이 대표로 있는 법인계좌로 이체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횡령 사고가 터져 금융당국과 전 은행권의 내부통제가 강화되는 시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고 이후 '각 업무 영역별로 모든 임원들이 내부통제 관련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허사였던 셈이다.
경남은행은 지난해 자체 점검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져 중징계는 불가피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남은행 직원의 횡령은 이미 지난해 이전에 발생했다"면서 "당사자가 횡령 사실을 계속 은폐해 자체 점검에서 적발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체 점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우리은행 횡령사고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복현 금감원장도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향후 내부통제 관련 은행권 제도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금융당국 내부통제 강화 조치 '무색'…현장에선 안지켜져
스마트이미지 제공이번 경남은행의 대규모 횡령 사고는 금융당국의 제도개선과 내부통제 강화 약속을 무색하게 했다. 횡령 사고를 낸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소속 직원 이씨는 올해 1월 투자금융기획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직무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속적으로 횡령 사실을 감출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준법 감시부서 전문인력 증원 △장기 근무자 비율 제한 △장기 근무 승인시 채무 및 투자 현황 확인 등 사고위험 통제 △명령휴가 대상자 본점 직무까지 확대 △순환 근무제 정착 △거액 자금 관리자 현황 관리 △자금인출 시스템 접근 통제 및 관리와 인출 직무분리 △내부고발자 제도 활성화 등의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사고 발생 시 대표이사에게만 전체 책임을 묻기보다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만들고 각 임원별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실효성 있는 통제가 가능하도록 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고에서는 금융당국의 대책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15년간 부동산PF 업무를 담당했다. 강제휴가를 통해 이씨의 의심스런 행동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명령휴가제도 시행되지 않았다. 전문 업무에 장기간 근무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순환 근무제도 지켜지지 않는 등 내부통제는 헐거웠다.
단단히 뿔난 금감원 "내부통제 실패에 기인"
황진환 기자금감원이 "이번 금융사고가 사고자의 일탈 외에도 은행의 내부통제 실패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경남은행의 기존 업무 관행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금감원은 경남은행 본점에 검사반을 확대 투입하고 PF 대출 등 고위험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실태 전반을 샅샅이 점검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고자는 약 15년간 동일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족 명의 계좌로 대출(상환) 자금을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등 전형적인 횡령 수법을 동원했다"며 "은행의 특정 부서 장기근무자에 대한 순환인사 원칙 배제,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 미분리, 거액 입출금 등 중요 사항 점검 미흡 등 기본적인 내부통제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최대한 신속하게 검사를 진행해 정확한 사실관계와 사고발생 경위 등을 파악하고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사항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한다는 계획이다.
검찰도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임세진)는 2일 오전부터 경남은행 부동산투자금융부 소속 이씨와 관련자들의 주거지, 사무실 및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등 10여곳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은행권 내부통제가 대폭 강화됐지만 장기근무 직원의 일탈 행위를 실시간으로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유기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이 정착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들어 6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금융회사의 횡령 사고는 32건. 횡령 금액은 31억원 수준이다. 은행에서 일어난 횡령 사고는 9건이고, 신협과 농협 등 상호금융업권 횡령사고는 21건에 달했다. 금융권 횡령 사고 액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18년 113억원이었던 횡령 액수는 지난해 1011억원으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