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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에 끌려가 日미쓰비시 강제노역…김재림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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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능주초등학교 졸업 이후 강제동원
2차 소송 원고로 대법원 판결 기다리다 30일 별세

김재림 할머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김재림 할머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 원고로 나선 김재림(94)할머니가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0년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김재림 할머니는 1944년 3월 화순 능주초등학교 졸업 직후, 현재 광주 불로동 삼촌댁에서 가사 일을 돕던 중 그해 5월경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 모집자가 와서 '일본에 갈래? 밥도 배부르게 먹여주고, 공부도 시켜준다'고 했다"며 "그때는 먹는 것보다도 공부 욕심이 나서,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강제동원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 "기차가 광주를 빠져나와 어느새 다음 역이 고향인 화순 능주역이라고 하니까,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해졌다"며 "늘 보던 고향 역을 지나가려니까 뭔가 잘 못 된 것 같아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서 동원됐을 때를 떠올리며, 김 할머니는 "미쓰비시에서 하루 종일 군용 비행기의 부속품을 깎는 일, 비행기 날개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 등을 했다"며 "하루 종일 기계에 매달리다 저녁이 되어 숙소에 돌아오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낯선 일이었기에 더 힘이 들었고, 밤이 되면 언제 울릴지 모르는 공습경보 때문에, 하루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다고 해서 잠을 편히 잘 수도 없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그때 일을 잊을 수가 없다"며 "어떻게 부모님과 떨어진 채 그 어린아이들한테 그런 일을 시켰던 것이지, 그리고 왜 아직까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4년 2월 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 원고로 참여했다

지난 2018년 12월 5일 광주고등법원에서도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상고로 마지막 대법원 판결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으며, 빈소는 국빈장례문화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8월 1일 오전 8시 30분이며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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