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깨어진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그 상처가 아문다 해도 결코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이를 두고 우리는 보통 성장이라 칭한다. 상처 받을 줄 알면서도 부딪치고 깨져서 얻게 되는 성장, 그것은 어쩌면 빛나는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지난 11일 첫선을 보인 넷플릭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19/20'(열아홉 스물)에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품은 청년 10인이 등장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들이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는 시기를 함께 보내면서 벌이는 일들을 관찰한다는 데 있다.
이 기간 출연자들은 서로에게 느끼는 설렘과 아쉬움, 기대와 실망을 거울 삼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정을 되풀이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크게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틈에 벌써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를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상처 받을 일보다 상대에게 상처 줄 일을 먼저 걱정하는 데서 치유의 동력을 찾는 태도는 남다른 감흥을 안긴다.
2004년생인 이들 10인은 열아홉 살 마지막 일주일을 '열아홉 학교'에서, 스무 살 첫 일주일을 '스물 하우스'에서 함께 보낸다. 두 시공간을 가르는 규칙이 하나 있다. '스물 하우스'로 넘어가기 전까지 '열아홉 학교'에서는 출연자 사이 연애가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19/20'의 변곡점인,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12월 31일 '스물 하우스' 풍경은 그래서 색다르다. 성인으로서 첫날을 맞이하고자 한껏 꾸미고 등장하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너에게 이런 면도 있었어?'라는 새로운 호감으로 가득하다.
'19/20'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합법적인 첫 술자리에서는 이러한 호감 수위가 절정에 달한다. 술기운을 빌어 평소와 달리 긴장과 어색함을 크게 덜어낸 출연자들은 보다 과감하게 자신을 어필한다. 그것은 '열아홉 학교'에 있는 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절절한 감정들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그날의 설렘, 떨림, 갈등, 환희….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친구에서 연인으로 변해 가려 애쓰는 청춘들 여정은 그 자체로 빛난다.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그 시절 우리네 역시 분명 그러했기 때문이리라.
언론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MZ세대' '90년대생'으로 명명된 청년세대는 마치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존재처럼 묘사되기 십상이다. '19/20'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러한 선긋기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점을 들춰낸다는 데 있다.
카메라에 비친 출연자들 모습은 그 시절 우리네와 결코 다르지 않다. 서로 관계를 맺고 끊고, 또 다른 관계를 다시 맺고 끊는 만고불변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얻어낸 성장. 바로 그것이 지금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존재를 빚어낸다는 인간 본질은 결코 변할 수 없다. 수시로 바꿔 입는 옷과도 같은 특정 경향을 '세대 차이'라는 미명 아래 극복 못할 간극처럼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년이라는 개념은 결코 생물학적 나이로 한정 지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너와 나의 성장을 좇고 이를 실현하고자 행동하는 자는 여전히 청년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이는 결국 누구나 다시 청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림으로써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19/20'이다.
'19/20'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