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1.7t 상당의 대형 화물이 굴러와 초등학생 황예서 양이 숨지고 어린이와 어른 등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부산 영도구 청동초등학교 앞 스쿨존 현장. 김혜민 기자부산 영도구 스쿨존에서 굴러 내려온 화물에 깔려 참변을 당한 고(故) 황예서(10)양 아버지가 법정에 나와 딸을 잃은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
17일 오전 부산지법 형사17단독 이용관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어망 제조업체 대표 A(70대·남)씨 등 4명에 대한 공판기일을 열었다.
A씨 등은 지난 4월 28일 오전 영도구 한 스쿨존 내 도로에서 지게차로 1.7t 대형 화물을 옮기다 떨어뜨려 초등학생 황예서 양을 숨지게 하고, 학부모와 초등학생 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양의 아버지는 연신 울음을 삼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황씨는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화면을 하루에 십수 차례씩 확인했다. 지금도 꿈을 꾸면 사고 장면이 계속 떠올라 잠을 못 잔다"며 "가슴 조임이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있고, 자고 일어나면 침대가 식은땀으로 다 젖어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서 엄마도 저와 비슷한 상황이다. 딸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매일 집사람에게 우리 인생 망했다, 끝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제 가족은 사실상 사형 선고를 받았고 무기징역과 같은 삶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황씨는 사고 당시 피고인들의 대처와 사고 이후 선처를 구한 피고인 가족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황씨는 "왜 하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위험한 작업을 했으며, 화물이 굴러가는데 (피고인들은) 왜 뛰지도 않고 걸어 다녔을까"라며 "심지어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걸 보고도 뒷짐을 지고 돌아오더라.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피고인 가족이 직장에 찾아와 선처해달라고 말하면서 '가진 게 없으니 일단 (피고인을) 빼내 주면 일을 해서 갚겠다'고 하더라"라며 "예서를 죽인 공장에서 몇십억 몇백억을 벌어온다 한들 그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내 자식, 내 손주라고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황예서 양 아버지가 17일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재판이 끝난 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진홍 기자마지막으로 황씨는 "예서가 오늘 살아있었다면 학교에서 제헌절에 대해 배운 내용을 엄마에게 자랑하고, 저와 엄마는 칭찬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아이, 저한테 위로를 주는 아이였던 예서가 없으면 저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며 오열했다.
그러면서 "부디 예서를 살려주시면 제가 무기징역을 살겠습니다. 사형을 받아도 됩니다"라며 "얼마 전 제 생일에 가족들이 케이크를 준비했는데, 예서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촛불을 밝히지 못했다. 예서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라며 증언을 마쳤다.
황씨가 눈물을 삼키며 증언을 이어가는 동안 방청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법정 속기사는 울음을 참으며 발언을 기록했고, 피고인 측 변호인마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판사는 다음 달 21일 검찰 구형과 최후진술을 들은 뒤 공판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황예서 양의 아버지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진행한 인터뷰에서 "얼마 전 부산시가 등굣길 전수조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 민원이 두려워서 공개하지 않는 듯한데, 일반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행정"이라며 "제2의 예서가 나오지 않도록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후속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