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방송통신위원회가 TV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권영철 대기자에게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권영철> 안녕하세요.
◇정다운> 대통령실에서 권고한지 30일 만에 TV수신료 분리징수안을 통과시켰네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지난달 5일 대통령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도입 후 30여 년간 유지해 온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 불편 호소와 변화 요구를 반영해 분리 징수를 위한 관계 법령 개정 및 그에 따른 후속 조치 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방통위에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거죠, 그로부터 꼭 30일이 되는 오늘 시행령 개정안이 방통위를 통과한 겁니다.
시행령이 전체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지난 1994년부터 전기요금에 통합돼 일괄 징수되던 TV 수신료가 별도로 징수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간 KBS 수신료 월 2500원은 현행 방송법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부과돼 왔습니다.
방통위 관문을 통과하면서 이후 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를 거친 뒤 이르면 이번 달 중순쯤 시행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정다운> 절차적인 면에서, 너무 급박하게 추진하는 것 아닌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니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민적 공감대나 대화나 토론, 정치적인 협상 이런 건 아예 없었습니다. 입법예고기간 접수된 국민의견의 90% 가까이가 분리징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아무런 반영도 되지 않았습니다.
시행령을 개정할 때 행정절차법상 일반적인 입법예고 기간은 40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은 10일의 예고만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심지어 당사자인 KBS의 의견진술 요청은 이유 없이 거부됐고, 징수비용 급증과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한전의 의견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방통위는 토론회나 공청회도 열지 않았고, 한국언론학회과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개 학회로부터의 의견 수렴 과정도 패싱했습니다. 기존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겁니다. 한국기자협회 등 13개 언론시민단체들이 "방통위가 군사작전처럼 수신료 분리고지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정다운> 왜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걸까요?
◆권영철> 첫 번째는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통위 김현 상임위원은 "과거 독재정권이나 이전의 보수정권은 지상파 방송을 확대강화 발전시켜서 이용하려고 했다"면서 "그 태도가 바뀐게 이명박 정부였는데, 지상파를 궁지에 몰고 종편을 띄웠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번 조치도 그런 흐름이라는 겁니다.
3일부터 방통위 집무실에서 단식 중인 김현 상임위원. 김현 위원실 제공 김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이명박 시즌2 지상파 해체, 지상파 탄압이에요. 공영방송 탄압. 그렇게 해서 소위 자신들에게 유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거죠." 홍원식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도 어제(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영방송 재원,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현 정권이, 과거 보수정권과 달리 TV 수신료 분리 징수 이슈를 주도하는 이유는 종편채널의 성장이 있다"면서, ""종편채널을 통해 정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가운데 공영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단 약화시켜 얻을 수 있다는 이익이 크다고 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사실상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된 이동관 특보가 취임하기 전 사전정지 작업을 완료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차기 방통위원장이 취임 후에 절차를 어기거나 위법한 게 드러나면 탄핵소추가 될 수도 있고 야당의 반발로 추진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방통위가 3인체제일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하려 한다는 겁니다.
TV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시행령 개정과 네이버의 알고리즘 조작의혹에 대한 실태조사, 방송통신심의위에 대한 감사 등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최대한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의 임기가 8월 23일 까지 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후임 방통위원장의 지명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세 번째는 총선 전 방송과 포털에 대한 길들이기 또는 장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분석입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지난달 2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1년 차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던 진보 지지층이 여전히 '안티 세력화'돼 있어서다. 국회에서는 거대 야당이 발목잡기를 하고 있고, 또 언론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언론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기 때문에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해 공영방송 더 나아가서는 지상파 방송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의 우군으로 평가하는 종편을 더 띄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TV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앞으로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 절차를 거쳐 이달 안으로 공포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모습. 황진환 기자◇정다운> KBS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권영철> KBS는 입장문을 내고 "특별부담금인 수신료에 대해 납부 선택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납부 선택권을 부여한 것으로 오도해 수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체납자가 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정부가 바라는 '국민 불편 해소'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KBS는 또 "공영방송 KBS라는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그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과실은 국민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입법예고 기간에 제출된 국민 의견들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 등에서 쏟아지고 있는 우려 의견들을 경청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근본적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라. 지금과 같이 일방향의 긴박한 진행은 잠시 멈춰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정다운> TV수신료 분리징수안이 시행되면 TV 수신료는 안 내도 되는 건가요?
◆권영철> 그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통합징수나 분리징수나 차이가 없습니다. 고지서를 한 장 더 받는다는 것만 달라집니다. 수신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체납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94년 이전에는 TV수신료를 받는 징수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징수율도 떨어질 테고 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