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다음달 4일부터 7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가운데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위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도쿄전력은 당초 130만톤에 달하는 오염수 저장탱크 포화를 이유로 올 여름 방류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일본 내 어민들의 반발 여론과 외교 상황 등 변수에 따라 방류 시점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30일 일본 언론과 우리 정부 등에 따르면 그로시 사무총장은 다음달 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오염수 관련 IAEA의 최종 보고서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외무성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그로시 사무총장과 기시다 총리가 면담과 오찬을 함께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IAEA 사무총장 만난 기시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앞서 IAEA는 6차례에 걸친 보고서에서 도쿄전력이 원전 오염수를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최종 보고서에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를 거친 오염수에 대한 안전성을 사실상 담보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방류 시기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시기에 대해 "올해 봄부터 여름 무렵으로 예상한다고 말하고 있다"고만 했다. 오염수 방류를 위한 설비 공사가 완료된 데다, 지난 28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최종 점검도 끝났다.
명분이나 설비 측면에선 사실상 일본은 다음달 7일쯤 이후부터는 언제든 오염수 방류에 착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도쿄전력은 오염수 약 130만톤을 약 1070개 K4 저장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알프스로 처리할 수 있는 오염수 용량이 매일 약 2천톤에 이르는 가운데 일본은 약 30년에 걸쳐 오염수를 방류할 계획이다.
일단 큰 변수가 없는 한 당초 계획대로 일본은 올 여름 오염수 방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방사능 물질이 담긴 오염수를 지난 2011년 이후부터 약 12년 간 일본 본토에 보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원전 전문가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방사능은 어쨌든 모아 놓은 것보다 분산시키면서 안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해안으로 방류하면 몇 년에 걸쳐 희석되기도 하지만 분산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자력 업계 내에선 '알라라(ALARA) 원칙'이라 불리는 기준이 적용된다. 알라라(ALARA)는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방사능에 노출되는 피폭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977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을 대부분 국제 기관들이 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문과 함께 IAEA 최종보고서 발표까지는 예상대로 진행되더라도, 방류 시점은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언론 역시 최종 보고서 공개 시점까지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지만, 최종적인 방류 시점은 기시다 총리에게 달렸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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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변화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고조됐지만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내는 등 미‧중 신경전이 진정 국면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8일 미국외교협회(CFR) 대담에서 "중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도 그렇다"며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블링컨 장관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도 다음달 초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고위급 경제 회담을 함께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촉즉발에 달했던 미중의 충돌 양상이 진정되는 분위기가 형성 될 경우, '오염수 방류'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중국 측의 입장을 미국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결국 한‧미‧일 공조 체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선택에 따라 일본의 오염수 방류 시점도 영향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입장에선 설사 방류 시점을 늦추더라도 지금은 올 여름 방류하겠다고 주장을 해야 외교적인 이득을 볼 수 있기에 표면적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방류 시점을 정했던 2년 전 당시 관측과 달리 저장 탱크에 여유가 생긴 점도 변수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원래 오염수가 하루에 120톤가량 나오다가 최근엔 가뭄 등으로 인해 100톤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며 "2년 전 관측 당시와 상황이 변해서 방류 시기를 늦춰도 된다는 여론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