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걱정말라더니"…내용증명에 소송까지, 분노의 지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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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임대료 납부유예 정책 발표했지만…위탁법인이 안 알려줘
뒤늦게 "미흡했다" 인정…상인들은 납부독촉에 소송까지 고통

 을지로지하도상가의 한 상인이 미납연쳬료가 부과된 고지서를 가리키고 있다. 장규석 기자 을지로지하도상가의 한 상인이 미납연쳬료가 부과된 고지서를 가리키고 있다. 장규석 기자 
 "마이너스 통장에서 지금 빚내서 임대료 내고 있는데요. 제 마통 이자가 18.7%나 되거든요. 지금 매출도 거의 안 나오는데"…서울 을지로지하도상가에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상인 A씨가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마…저기 건너 상가는 밀린 임대료 갚는다고 일수까지 썼다고 하더라. 1천만원 빌렸는데 하루 이자가 12만원이라고 하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상인 B씨가 혀를 찼다.
 
"임대료가 좀 밀렸다치면 내용증명이 와요. 그러고는 소송까지 갑니다." B씨는 '부동산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이라는 제목이 붙은 법원 결정문을 내밀었다. "가처분 소송으로 밀린 임대료 받아내려고 압박하는 거에요." B씨는 망연자실한 이웃 상인을 대신해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써줬다고 했다.
 한 상인 앞으로 날아온 법원의 가처분 결정문. 독자 제공한 상인 앞으로 날아온 법원의 가처분 결정문. 독자 제공
코로나 사태는 끝났지만 며칠 전 기자가 찾았던 을지로지하도상가에는 상인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이곳 상인 200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임대료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22년 1월 서울 소공지하도상가를 찾았다. 코로나19로 상인들의 어려움이 한창이던 당시, 오 시장은 고통을 호소하는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필요 이상으로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다독였다.
 
오 시장이 지하도상가를 다녀간 한 달 뒤 서울시는 임대료 최대 60% 감면, 공용관리비 감면, 임대료 납부유예 등을 골자로 한 파격적인 지원 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은 지금까지도 지하도상가와 같은 서울시 공유재산을 임차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연장 적용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시가 공유재산 임대료 감면과 납부유예 등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보도자료.  지난 3월 서울시가 공유재산 임대료 감면과 납부유예 등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보도자료. 
대책대로라면 지하도상가 상인들은 임대료를 일부 감면 받는 것은 물론, 납부를 미루더라도 연체료를 물거나 임대료 납부 독촉을 받지 않아야 한다. 또 납부유예를 받은 임대료는 나중에 분할로 납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을지로지하도상가 상인들에게는 이런 임대료 납부유예 지원책이 딴 나라 얘기였다. 서울시에서 지하도상가 운영을 위탁받은 수탁법인 D사는 임차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매달 꼬박꼬박 받아갔고, 임대료가 밀린 상인에게는 연체료까지 납부고지서에 찍어 고스란히 받아냈다.
 
연체가 일정 기간 넘어가면 어김없이 내용증명이 날아왔고, 그 뒤에는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사례도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상인들은 쫓겨나지 않으려 사채 빚까지 써가며 임대료를 냈다.
 

알려주지도 않았고 점검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4월 우연히 상인 B씨가 납부유예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6개월 납부유예가 7차로 진행 중이니까 지난 2020년 2월 이후 제도 시행 3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을지로지하도상가 모습. 장규석 기자 을지로지하도상가 모습. 장규석 기자 B씨는 "최근에 우연히 납부유예 제도를 들어 알게 됐다"면서 "D사에서는 임대료 고지서를 발급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른 채로 상인들은 40개월 가까이 사채 빚까지 내가며 고통스럽게 임대료를 낸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시도 서울시설공단에, 시설공단은 D사에 관련 공문만 내려 보냈을 뿐이었다. 상인들은 "시장까지 나서서 내놓은 대책인데 지원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어떻게 점검도 한번 안 할 수 있느냐"고 서운함을 호소했다.
 
상인회가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자 서울시에서는 그제서야 지난 8일 "을지로상가 수탁자가 감면 세부사항 이행에 미흡했던 사실이 있었다"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지원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세심하지 못했던 대책…"미흡했다" 인정

 
 그러나 수탁법인인 D사 관계자는 "위에서 납부유예를 해주라는 지시만 내려왔지 세부적인 지침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수탁법인은 경쟁입찰을 통해 서울시에서 지하도상가 단위별로 운영권을 확보하는 5년짜리 위수탁 계악을 맺고 1년치 대부료를 선납한다. 그리고나서 해당 법인이 개별상가를 상인들에게 임대해주고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받는 구조로 돼 있다.
 
이 관계자는 "납부유예 지시가 내려온 시점과 계약 시점이 서로 맞지 않았고, 이미 연간 대부료를 서울시에 선납한 상황에서 개별 상인들에게 납부유예를 해주는 수탁법인에는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 그런 세부적인 지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복잡한 운영 구조 속에 어떻게 현실적으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경감해줄 수 있을지 세심한 시행방안도 없이 서울시가 일단 지원 대책부터 발표하고 본 셈이다.
 지난 2022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소공지하도상가 상인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있는 장면. 서울시 제공영상 캡쳐지난 2022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소공지하도상가 상인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있는 장면. 서울시 제공영상 캡쳐
상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시와 시설공단 등은 그제서야 "관련 내용을 확인했고, 피해 임차인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세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 B씨는 "40개월 가까이 서울시가 점검 한번 하지 않았는데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납부유예 지시를 받고도 이를 상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연체료까지 받아간 수탁법인은 결국 횡령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게 아니냐"며 "필요하다면 형사 고발까지도 검토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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